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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행성 아이테리스를 지배했던 종족이자 별의 번영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자들. 그들의 운명을 이끌어 미래와 영원을 꿈꾸었던 14인 위원회. 그 중에서도 별 위에서 살아 숨쉬는 생명을 돌보고 별의 곳곳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자. 그 생명이 다할 때까지 지상의 별들을 연결하려 했던 끝없는 순례자. 그는 누구인가?

 ──14번째 자리, 그 이름은 아젬이다.
  • 무한한 개수의 지성체로 이루어진 범차원적 존재. 이들은 서로를 '나'라고 칭한다.
  • 주축이 되는 개체는 리케이오스 라는 이름의 고대인. 만이천년 전 사망한 과거의 잔재이자 Liberius의 전생.
  • 그는 아주 오래 전부터 Liberius를 알고 있었다. 미래를 볼 수 있었던 리케이오스는 세상이 멸망하기에 절망했고 세상이 구원받았기에 희망을 되찾았다. Liberius가 세상을 구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는 많은 것을 희생했었다. 가족, 친구, 동료, 동족,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영혼까지.
  • 성공한 영웅의 이야기를 목도한 그는 실패한 영웅들한테 성공한 영웅의 이야기를 노래해주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실패해버린 삶 또한 의미가 없지 않았다고 전해주기 위해.
  •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위하여!



관련 독백

"나를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 이벤트 독백
 리베리우스는 눈을 떴다. 숙면을 취하다가 기상한 인간이라면 으레 해야 하는 행동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스러운 일상을 살고 있었고, 당연함에 취해 있었으며, 익숙한 집 천장이 눈에 들어오길 기대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창문 없는 컴컴한 방이 눈에 들어왔을 때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잠기운에 취한 목소리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가 머무르는 올드 샬레이안의 건축 양식은 이렇게 폐쇄적이지 않았고, 이만큼 어두침침하지도 않았다. 건물이 모두 밝아 눈이 아프면 아팠지. 당황한 리베리우스는 침대 옆 협탁을 찾아 손을 허우적거렸다. 있어야 하는 협탁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고, 그 위에 올려놨던 안경도 없었다.

 대신 그가 찾는 안경은 자기 스스로 리베리우스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지휘봉을 휘두르듯 빠르면서 유연한 동작으로 안착하는 검은테 안경. 리베리우스의 안배는 아니었다.

 "이걸 찾고 있니?"
 "아, ⋯ 감사합니다."

 한손으로 안경을 고쳐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눈 앞의 사물이 분간이 되었다. 검지를 휘두르는 것으로 손쉽게 안경을 찾아준 이 또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오랜만입니다. 반 년만에 뵙네요."

 태양을 닮은 눈동자로 샐쭉 웃는 여인.

 "아젬."

 한때 행성 아이테리스를 지배했던 종족이자 별의 번영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자들. 그들의 운명을 이끌어 미래와 영원을 꿈꾸었던 14인 위원회. 그 중에서도 별 위에서 살아 숨쉬는 생명을 돌보고 별의 곳곳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자. 그 생명이 다할 때까지 지상의 별들을 연결하려 했던 끝없는 순례자. 그는 누구인가?

 14번째 자리, 그 이름은 아젬이다.

 "만나고 싶었어! 나의 영웅아!"

 갈색 머리의 여인이 활짝 웃으며 외쳤다. 그 눈에는 존경하고 친애하는 사람을 향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구부정하던 그의 허리가 보기 드물게 완전히 펴질 정도였으니.

 본인의 환생체를 대한다는 것만으로는 전부 설명할 수 없는 환희가 이곳에 있었다.

 "잘 지냈니? 아픈 곳은 없고?"
 "덕분에요."
 "너한테 안부를 전하고 싶어한 우리들이 많아."
 "우리⋯⋯ 아⋯. 그래서 저를 부르신 건가요?"

 목을 쭉 앞으로 내밀며 아젬이 키득키득 웃었다.

 "아니? 이건 우리가 저지른 일이 아니란다. 네가 죽고 못 사는 카톡방 사람 중 하나가 저지른 일 아니겠니?"
 "⋯⋯."

 리베리우스는 팔짱을 끼고 아젬을 내려보았다. 방어적인 자세로 나온다.

 "제가 그⋯ 채팅방⋯을 이용하는 걸 알고 계시는군요."
 "응."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분명 당신과 헤어진 뒤에 채팅방에 처음 접속했었습니다."
 "궁금해?"

 아젬이 고개를 기울였다. 약 45도의 기울기다. 기괴하게 보일 수 있는 자세임에도 리베리우스는 익숙하다는 듯 반응을 않는다.

 "지금 시점이면 말해도 되겠지?"

 허공 한 점을 응시하던 사백안을 리베리우스 쪽으로 도르륵 굴린다.

 "나는 미래를 읽을 수 있단다."
 "예. 들었습니다."
 "에테르의 흐름을 읽으면 에테르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있지. 기본 구성 성분을 안다면 세계 전체를 아는 것도 쉬워. 약간의 정보만 있으면 돼⋯⋯. 한 줌의 단서로, 나는 백 년 뒤 이 시간에 초원의 바람 방향을 보고, 천 년 뒤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들을 수 있어. 뭐어 물론 기간이 멀어질수록 정확성은 떨어진다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자세한 기제의 설명은 생략할게? 괜찮지?"
 "예. 편하신대로 하세요."

 아젬의 상체가 원래 기울어져 있던 것의 반대쪽으로 135도 기울어졌다.

 "그런 내가 반 년 전에 너를 만났잖니. 무엇을 봤겠니?"
 "⋯⋯ 그 때부터 제가 채팅방에 접속할 것을 아셨단 말씀입니까?"
 "그것 뿐이겠니!"

 웃음이 짙어졌다. 입꼬리는 찢어졌으나 사백안은 여전히 부릅 떠져있어 해괴한 미소였다. 아젬은 그 때 당시에 느꼈던 충격을 되새김질했다.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충격을⋯⋯.

 "너를 통해 나는 우리가 사는 이 14개의 세계 말고도 더 많은 차원이 있다는 걸 알았지. 내가 거기에서 멈추었을까? 아니! 새로운 세계의 극치에 이르도록 읽고 또 읽었단다! 우리의 우주 너머에 있는 우주를, 세계들을 구성하는 구조와 단위를, ── 차원이 무얼 위해 탄생했는지를!"

 존재 자체가 압도당할 듯한 지식들 앞에서 느꼈던 희열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쾌감에 겨워 하늘로 뻗은 두 손이 곱으며 떨린다.

 "한번 물꼬가 트이니 그 뒤는 쉬웠단다! 나의 가설이 진실일지에 대한 당연한 의심은 할 필요가 없었어, 읽으면 읽을수록 내 눈에 보이는 게 늘어났거든! 시간은 더이상 의미가 없었어! 공간은 더이상 제약이 아니었어! 그래, 네 덕분에── 네가 문을 열어준 덕에 나는 차원을 초월할 수 있었단다!"
 "⋯⋯."

 리베리우스의 두 눈이 날카로워졌다. 경험 상, 저런 말을 하는 자들이 뒤이어 할 행동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가 많았다. 지금의 자리가 선전포고의 장소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리베리우스가 경계심을 높였다.

 "⋯⋯ 이런 결과를 낳을줄은 상상하지 못 했습니다."
 "어머⋯ 후후, 걱정하지 마렴. 우리는 네게 정말로 감사해. 네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단다."
 "글쎄요, 그건 당신이 무얼 해왔고 무얼 할 것이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하하!"

 아젬이 웃음을 뱉었다.

 "아무렴 설마 내가 신이 되겠다고 설치기라도 할 것 같니?"

 네 그러실 것 같습니다. ⋯ 라고 말하고 싶은 걸 리베리우스는 꾹 참았다.

 "정말로 걱정하지 말아. 네게 해가 될 일은 안 할 거란다. 휘틀로다이우스를 걸어도 좋아."
 "당신 친구를 이럴 때 아무렇게나 걸어도 되는 겁니까."
 "에메트셀크처럼 구는구나. 친구끼리는 닮는다더니 친구 증조할아버지랑도 닮은 거니?"

 리베리우스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사이 아젬이 말을 이었다.

 "⋯⋯ 너를 별의 바다에서 건져올린 다음 내가 무얼 했을 것 같니?"
 "그대로 녹아 사라지셨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지 못 했단다. 겨우 불완전한 차원의 자그마한 별한테 쓸려나가기엔 나의 격이 이미 너무 높아져 버렸었거든. 대신에 나는⋯ 다른 시간선으로 떠났어."

 한때 아젬은 희망의 등불을 손에 들고 희미한 빛을 이정표 삼아 어둠 속을 걸어나갔다.

 "선택에 따른 경우의 수만큼 차원은 나눠지고 또 많아지지. 누군가가 겪을 수도 있었을 사건의 가능성의 개수만큼 다양한 차원이 존재해."

 어딘가에는 희망이 이미 꺼져버린 곳도 있었다.

 "그 중에는 네가 별의 바다에서 다시 살아나오지 못 한 곳도 있었지. 필멸의 절망에 물들어 종말의 노래와 하나가 된 너도 있었고. 대죄식자가 되어 멈춰버린 세계의 마지막 지성체로 남은 너도, 하늘 높이에서 추락해 영웅이 되지 못한 너를, 궁극의 마법에 짓눌려 한 줌에 재가 되어버린 너까지, 나는 만나왔어."

 하나의 성공을 위해 수없이 존재했던 실패의 위기들. 어딘가의 영웅은 고난 앞에 무너졌을 것이며 또 누군가는 실패하여 모든 걸 망쳐버렸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리베리우스도 언젠가는 실패하고야 말 거라고 절망했던 순간이 있었다.
 리베리우스는 다시 일어났지만 누군가는 더이상 설 수 없었다. 그 뿐이다.

 "나는 그들한테 리베리우스, 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 어째서죠?"
 "그들의 행동이 의미없는 발버둥이 아니었다고 알려주고 싶었어. 어딘가에는 네 시도가 성공한 세계가 있다, 그곳에는 네가 전하고 싶었던 희망이 더 널리 퍼질 수 있었다고⋯⋯. 괴롭고 절망스럽겠지만, 어째서 이런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건지 원망스럽겠지만, 그럼에도 네 의지는 결코 틀린 게 아니었다고⋯⋯ 전해주고 싶었단다."

 언젠가 아젬이 동포를 위해 결심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인간의 힘을 아젬은 믿었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쓸모없는 게 아니라고 모두한테 알리고 싶었다. 그 범위가 행성 하나에서 차원 간으로 넓어진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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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그렇게 만난 '나'들에게 나는 다른 차원의 '나'들한테도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단다. 고맙게도 많은 수의 '나'들이 동의해주었지. 더 많은 '내'가 다른 시간선으로 넘어가 희망의 등불을 건네고, 그 곳의 '내'가 또다른 '나'를 만나고⋯."
 "⋯⋯."
 "⋯ 그렇게 하다보면 언젠가 무한히 많은 희망을 꽃피울 수 있지 않겠니!"

 아젬이 활짝 웃었다. 이론적인 발상이어도 실현시킬 힘이 있다면 거기서부턴 현실이다. 자기만족에 불과함을 그 또한 안다, 이런다고 해서 실패의 사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뭐 어떤가? 행복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늘어나면 좋은 게 아닌가!

 그러나 리베리우스의 표정은 심각히도 어두웠다. 부담의 무게에 짓눌려 기를 펴지 못 하는 모습이었다.

 "⋯⋯ ⋯⋯ 저는 그 수많은 존재를 뒤로 해도 될 정도로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눈꼬리를 휘어가며 샐쭉 웃는 아젬.

 "그야 당연하지? 착각하지 마렴, 너는 성공했지만 특별하지는 않아. 실패에 이르기까지의 경우의 수 집합 또한 너만큼 독자적이며 유일해."
 "⋯⋯ 그건⋯ 또⋯⋯ 신기한 관점이군요."
 "'우리'는 그저 하고싶은 일을 할 뿐이란다! 어차피 죽어버린 거 거리낄 게 있겠니? 신경쓸 게 뭐 있어! 사실 이렇게 만날 일이 없었더라면 평생 말할 생각도 없었단다!"

 위로의 뉘앙스를 품은 말이었으나 리베리우스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당신들은 왜 그런 짓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아하하하. 사랑하니까!"

 아젬이 리베리우스의 앞에서 당당하게 두 팔을 벌렸다.

 "나를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그 대답을 듣고 리베리우스는 한참동안 대꾸가 없었다. 팔짱을 낀 자세 그대로 하염없이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아젬이 내놓은 해답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고민했다.

 많은 시간이 흘러 리베리우스가 겨우 입술을 떼어낸다.

 "당신은 나의 전생이라기엔 나와 전혀 안 닮았군요."
 "그러니? 나는 우리가 지독히도 닮았다고 본단다."

 종족도, 성별도, 그 무엇 하나 닮은 게 없는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본다. 태양처럼 찬란히 빛나는 영혼 외에 이 두 사람을 연결시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 이제 와서 그만하라고 해봤자 너무 일이 커져버렸겠죠. 제 말을 들으실 분도 아닌 것 같고요."
 "너 정말 네 친구 증조할아버지처럼 말하네."
 "저는 그 일에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알아서 하세요. ⋯⋯ 부디 여러분들이 행복하셨으면 좋겠군요."

 아젬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은 지금 행복하다는 의사의 표명이다.

 "⋯⋯ 이 이야기는 이제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 건가요."
 "그러게나 말이야. 내 생각에 이 공간은 우리가 치고박고 싸우길 기대하는 것 같아."
 "우리가요? 왜요?"
 "'우리'야 모르지?"

 어깨를 으쓱이는 아젬.

 "그래도 나쁘지는 않잖아?"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부끄럽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으나 본인의 감정을 속이지는 않았다. 아젬은 그 모습이 재미있다며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

 "전신(轉身)을 해도 천장에 머리가 안 닿을라나 몰라."
 "혹시 도끼 하나 만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좋지! 다른 직업 안 들어도 괜찮겠니?"
 "아침 운동을 하기엔 전사가 제격입니다."

 아무튼 성공한 리베리우스와 실패한 리베리우스가 창문 없는 검은 방 안에서 치고박고 싸우기는 했다.
 그런 이야기다.






"0번째 "내"가 캐릭터 특성창을 열었어."

▶ 무언가의... 글조각
[상황 설명]
리베리가 톡방에서 상태창을 말했더니 상태창이 열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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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과 차원 사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 첫 번째 아젬은 좆되는 느낌을 받아 몸을 벌떡 일으킨다. 허둥지둥 자세를 잡으며 앉은 아젬이 심각한 표정으로 0번째 리베리우스의 차원을 들여다본다. 그 모습을 본 또다른 아젬이 아젬의 옆으로 기어와 기웃거린다.)

- 왜 그래? 무슨 일 있니?
- 0번째 "내"가 캐릭터 특성창을 열었어.
- 오.
- 특성창을 열었다고? 어떻게?
- 초차원 오픈 카톡방에서 이용자들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야.
- 이런 일까지 생길줄은 예측하지 못 했는데.
- 역시 미리 조치를 취해뒀어야 하나? 리베리우스한테 나쁜 영향을 미치면 어쩌지?
- 하지만 우리가 개입하지 않아도 잘 돌아가고 있는 세계를 굳이 건드릴 이유도 없잖니.
- 그건 맞아.
- 그건 맞아.
- 건드리는 게 더 싫어.
- 리베리우스는 어쩌지? 우리와 우리의 세계가 창작물이라는 걸 알면 안 되는데.
- 그러게 리베리우스가 초극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흡수하자니까.
- 아냐, 그래도 상태창을 연 것만으로 거기까지 도달하지는 않을 확률이 더 높잖니. 마법의 일종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더 높아.
- 그건 더 살펴봐야 해, 왜냐하면 상태창이 차원적 특성에서 비롯됐다는 단서가 리베리우스한테 주어졌거든.
- 누가 그런 말을 한 거야?
- 초카방 이용자가.
- 젠장! 욕도 못 하겠구나.
- 그래도 역시 나는 리베리우스가 진실에 도달하진 못 할 거라고 보는 입장이란다.
- 나 역시 그래. 추가로 조치를 취할 필요는 없을 거야.
- 나 또한 나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야. 예상치 못 한 사태임은 확실하지만 과하게 신경을 기울일 사안은 아니라고 봐.
-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선 기억을 지우는 게 깔끔하지 않겠니?
- 우리의 걱정을 덜겠다고 우리와 독립적인 개체의 기억을 건들겠다고? 그건 이기적인 선택이야.
- 다른 이야기 미안한데, 나의 영웅은 리베리우스가 아니었어서 그런데, 리베리우스가 이 사안을 더 탐구하려 할 가능성이 높니?
- 음.
- 나라면 할 거야.
- 나도.
- 나를 물은 게 아니라 리베리우스를 물은 거야.
- 그런데, 봐봐, 상태창은 리베리우스만 쓸 수 있잖아. 본인이 특수 케이스라는 걸 안다면 그 이유를 찾아내려 하지 않겠니?
- 오, 나라면 정반대로 행동할 거라고 판단할 거야. 보편적 활용 방안을 내놓을 수 없다면 굳이 더 탐구할 필요가 무엇 있겠니?
- 빛의 전사니까 특별한 거라고 넘어갈지도 모르겠구나.
- 아젬 만세야.
- 아젬 만세.
- 아젬이라는 두 음절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
- 자화자찬이 수준급이구나.
- 그래도 거부감 정도는 심어두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단다.
- 앞선 얘기를 반복하게 하지 마렴.
- 어느 쪽으로 흘러가든 리베리우스의 이야기에서 물러난 우리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야.
- 그렇지만 나는 리베리우스가 우리의 진실에 가까워지지 않았으면 하는데.
-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도 뿐이야.
- 신한테 기도해볼까? 처음 해보는 거라 조금 설레는구나.
- 나는 조디아크한테 할게.
- 혹시 어둠의 사도니?
-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주렴.
- 하이델린님이 정석이잖니 이 배신자야.


(리베리우스의 차원이 시간을 멈춘다. 첫 번째 아젬이 차원을 양손으로 꾹 붙들고 있고, 아젬들의 수다가 잠시동안 멈춘다.)

- 첫 번째 나야. 왜 시간을 멈췄니.
- ......
- ......
- ......
- ...... 리베리우스가 alt f4를 입력했어.

(침묵.)

- 단축키 설정 안 해놨니?
- 해놨겠니? 플레이어가 없는데?
- 지금 우리 차원 설정대로라면 운영체제 기반 명령어가 실행되지 않아?
- 게임 설정이 우선이 아니라?
- 우리 차원이 게임을 그대로 가져온 차원이 아니라서 안 될걸?
- 그럼 0번째 나의 차원은 이제 삭제되는 거야?
- 삭제돼?
- 삭제하게 둬?
- 삭제시킬 거야?
- 삭제되게 해야지?
- 삭제 못 되게 막아야지?
- 왜 막아?
- 막고싶다는 추동이 생겼잖니?
- 삭제를 막고 싶다는 정서가 지금 이 사태를 인지한 나들의 75%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 맞아. 나는 삭제를 막고 싶다고 생각해.
- 이렇게 지극히 허무하게 죽는 걸 보고싶었던 게 아니야.
- 하지만 그건 내가 늘 느끼던 감정이잖아.
- 맞아.
- 나는 아모로트가 멸망하는 것도 보고싶지 않았어.
- 불타는 고향의 하늘을 보고싶지 않았는데.
- 그럼에도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하기에 멸망을 방치했었고.
- 우리의 고향은 멸망하도록 방관한 우리가 리베리우스의 죽음을 막을 권리가 있니?
- 공정함을 위해서라면 나는 이 죽음을 막지 말아야 해.
- 이것 또한 리베리우스가 만들어낸 미래이자 삶 중의 하나야.
- 하지만 0번째의 내가 없었으면 우리는 우리가 되지 못 했을 거잖아.
- 은혜갚기라는 거지.
- 그래도 안 돼. 규칙에 예외를 둘 수는 없어.
- 우리는 리베리우스의 주체성에 개입해서는 안 돼.
- 0번째 나를 멸망에서 구한다면 다른 '실패한 빛의 전사'를 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 나는 개입하지 않기로 이미 정했잖아.
- 만약 가능했다면 나도 내 영웅을 살리고 싶었어...
- 나도.
- 나의 영웅도.
- 하지만 그건 생각해야 해. 0번째 나는 우리의 고향 외의 다른 차원에도 인연이 있어.
- 0번째 내가 죽으면 분개할 초차원 존재들이 꽤 있어.
- 싸우러 쳐들어 와?
- 우와. 내가 싸울래.
- 나도.
- 나도.
- 나도.
- 제발 정신을 좀 차려 너네가 이러니까 내가 정신줄을 잡아야 하잖아.
- 고향 차원의 안위를 생각해서라도 0번째 나를 케어해야 한다는 말이지?
- 하지만 고향 차원이 멸망하는 것과 우리가 무슨 상관이야?
- 우리가 차원 관리자인 것도 아니잖아?
- 우웩.
- 진짜 싫어.
- 우리 중 하나를 0번째 나의 차원의 관리자로 앉힐까? 그러면 차원을 관리하는 게 의무가 되잖니.
- 첫 번째 나야.
- 싫어.
- 싫구나.
- 진짜 싫어.
- 진짜 싫구나.
- 그럼 다른 나 중에는 없니?
- 있겠니?
- 일은 완전 극혐이란다.
- 아젬 말고 빛의 전사 출신인 나한테 맡길까.
- 그건 더 안 될 것 같은데.
- 0번째 나를 질투할 것 같단다. 실패한 빛의 전사들뿐이 없잖니, 우리한테는.
- 그들이 차원 관리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는지 우리가 감시하는 건?
- 그럴 바에는 그냥 우리가 관리자를 하고 말지.
- 이 안은 폐기하는 걸로 하자꾸나.
- 이야기를 원래대로 되돌리자. 그래서 우리는 리베리우스한테 개입해도 될까? 안 될까? 좋은 의견이 있는 나 있니?

- 잠깐만. 초차원 오픈 카톡방의 이용자한테서 좋은 의견이 나왔어.
- 오.
- 소개해주렴.
- 무엇이니?
- '타 차원의 개체와 리베리우스 간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 사건을 리베리우스 고유의 사건으로 인정한다면, 리베리우스와의 교류로 인해 발생한 타 차원의 개체 주도의 차원 복구 또한 리베리우스 고유의 사건으로 인정해야 한다.'
- 검토할만한 가치는 있네.
- 흠.
- 즉 우리를 주체적인 결정자가 아니라 도구적 객체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니?
-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지.
- 말장난이로구나.
- 하지만 마음에 들어.
- 그럼그럼. 우리는 우리의 의지 없이 휘둘렸을 뿐이야.
- 웃기네.
- 대다수의 내가 이 논리를 받아들여 0번째 리베리우스의 차원을 구제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 같은데, 내가 파악한 것이 옳니?
- 나는 이견 없어.
- 나 또한.
-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 사람 죽는 걸 보는 것도 기분이 좋진 않잖니.
- 좋아, 그러면 한번 삭제시켰다가 다시 복구시키는 것에 대한 거수 투표를 진행하도록 할게. 이 자리에 참석한 나는 이 제안에 찬성한다면 모두 손을 들어주렴.

- 그런데 이것은 미봉책이라는 걸 다들 알 거야.
- 그럼.
- 물론이지.
- 우리의 질문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았어.
- 리베리우스의 생명의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의 정서 경험에 의거해 행동해도 괜찮은가? 간단히 말해, 우리가 리베리우스를 살려도 되는가?
- 토론할 나.
- 나.
- 나.
- 말은 안 해도 되니까 손만 들렴.
- 나.
- 여기 모인 나들이 한꺼번에 말하면 시끄러우니까 말 하지 말라고.
- 논거 준비 시간이 필요하니? 얼마 정도면 될까?
- 이번 토론에서 결정된 내용대로 우리의 행동 방침이 수정되는 게 맞니?
- 아젬 출신의 나 말고 빛의 전사 출신의...
- 통계 데이터를 보면...
- ...
- ...
- ...







- 그래서 차원 전쟁은 언제 하러 가니?
- 넌 원래 차원으로 돌아가렴.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몰라서 죽는다니! 하하! 멍청한 인간들!"

▶ 우리의 마지막
 리케이오스는 희망을 발견했다.

 "하하!"

 그러자 그는 절망했다.


🌠🌟🌠


 리케이오스는 두 가지 특징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하나는 그가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점이었고, 또다른 하나는 입에 달고 사는 극단적인 비관주의였다.

 "그딴 식으로 살다가는 언젠가 죽을걸?"

 언젠가 한 번은 혀를 이딴 식으로 놀리는 바람에 또래 친구를 울리기까지 했었다. 리케이오스로선 억울할 따름이다, 당연한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인류가 지금처럼 생존한다면 언젠가는 멸망할 것이다. 모두 죽어 없어질 것이라는 확실한 미래를 읊었더니 아무도 믿지 않았다.

 리케이오스가 바라보는 미래 세계는 언제나 불길에 뒤덮인 채였다. 하늘에선 유성우가 불덩이로 화해 추락했으며, 땅 위에 세워졌던 영화의 도시는 무너져 바람에 휩쓸려 사라졌다. 어떤 사람은 종말의 사건 속 괴물로 변해버렸다. 누군가는 그 괴물한테 잡아먹혀 죽었다. 어떤 사람은 종말을 덮어 눈을 돌릴 미봉책에 자기 목숨을 바쳤으며, 누군가는 그 미봉책을 없애고자 같은 인류를 칼로 찔렀다. 파벌이 나뉜 싸움에 휘말려 죽은 인간, 세계를 분단시키는 공격을 피하지 못 한 사람, 쪼개지는 세상 속에서 찢겨 죽은 사람, 희생하는 사람, 배신하는 사람, 맞서는 사람, 도망치는 사람, 절망의 종류는 이토록 다양하고 단조롭다.

 태양의 눈이 바라본 인간은 하나같이 절망 속에 죽어갔다. 그리고 그 원인은 지극히도 단순하다.
 파랑새한테 인간이, 생명이, 삶이 이어지는 까닭을 대답하지 못 했기 때문에!

 "하하!"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몰라서 죽는다니!

 "하하! 멍청한 인간들!"

 이토록 한심한 작자들이 어디에 또 있을까! 리케이오스는 인간에 대한 기대를 버린지 오래였다. 그가 아무리 인간의 힘을 설파해봐도 후드를 뒤집어쓰고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아모로트의 사람들은 리케이오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위대한 아모로트의 시민들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살기보다 영원한 전체를 위한 일부로서 기능하기를 택했다. 개인의 감정을 바라보는 것을 이성적이지 못 하다 이야기하고 별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의무이자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리케이오스의 예언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어느순간, 리케이오스는, 포기했다. 그러고는 자기 마음대로 살기 시작했다. 어차피 다 죽어버릴건데 체면 따위 차릴 필요가 있겠는가? 아카데미아에 다닐 적 그의 별명이 '미친 싸움닭'이었던 까닭이 이 때문이다. 학생이건 교수건 할 것 없이 짜증이 난다 싶으면 두 눈 치켜뜬 채 들이받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운명을 바꿔준 친구를 만난 것이 그 때 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리케이오스의 삶이 뒤바뀐 건 그 친구의 미래를 읽은 덕분이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답답하고 꽉 막힌 아모로트인(人)의 전형인 사람이 리케이오스를 바꾸려 해봐야 얼마나 바꿀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까 그건,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던 우연한 사고였다. 하데스라고 불리는 그 친구가 무심코 상대방의 에테르 짜임새를 엿보고 마는 것처럼, 리케이오스 또한 무심결에 상대방의 미래를 들여다보고 말았다.

 그 순간, 리케이오스는 마침내 '종말 이후의 세계'를 목도했다. 종말 이후에도 삶이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종말에서 살아남은 단 세 명의 생존자. 그 중의 한 사람으로서 하데스는 세계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인류를 다시 부흥하기 위해 만이천 년의 세월을 버틴다. 그리고 그 끝에 나타날 영웅은, 하데스의 의지를, 인간의 의지를 이어받아 생명의 대답을 우주 너머로 전달한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미래 속에서 리케이오스가 느꼈을 환희와 경외를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두 손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세월동안 체념해왔던 희망의 불꽃이 그곳에선 여전히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다. 인간은 살아가는 까닭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쟁취할 능력을 우리는 갖고 있었던 것이다⋯⋯.

 "⋯⋯ 하하."

 그러나 희망의 등불을 든 영웅은 리케이오스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하하."

 그의 영혼은 잘게 쪼개져 만 년이 넘는 시간동안 윤회의 굴레에 빠져야 한다.
 인간의 미래를 위해 리케이오스의 영혼이 토대가 되어야 했다.

 "하하!"

 리케이오스는 죽어야 했다.

 "하하! 이 씨발거!"

 그 사실을 깨닫자 리케이오스는 실성했다. 지혜열을 심하게 내며 몇 날 며칠을 침상에서 벗어나질 못 했었다. 이토록 얄궂은 일이 있단 말인가, 인류가 자멸하지 않을 길을 겨우 찾아냈다 싶더니 그 미래에 자기 자신은 존재치 않으니.  리케이오스는 죽고싶지 않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영원에 가까운 수명을 지녔다 해도 일상을 누리는 건 언제나 행복하다. 휘틀로다이우스와 나가는 바깥 나들이가 재밌고 하데스를 살살 긁으며 놀리는 것이 즐겁다. 이런 기쁨을 자기 스스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언제까지나 지금 상태 그대로 살고 싶었다.

 사실, 그래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리케이오스가 보는 미래는 결정된 미래가 아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경우의 수를 탐색할 뿐이고, 예언은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뒤바꿀 수 있다. 살아남고 싶다면 살아남으면 된다. 그럴 능력도 지식도 전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걸 잊고 혼자만 살아남기에는 인간을 지나치게 사랑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홀로 괴로워하며 힘겨워 했던가? 겨우 발견한 희망을 사사로운 욕심으로 버리고 싶지 않았다.

 "하하."

 그렇다 하더라도, 잘못된 길에 드는 친우와 동료를 인간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분 하나로 방치해야 하는가? 다른 이의 희망을 위해 자기 자신을 사지로 내몰아야 하는가?
 미래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려야 한다는 말인가.

 "⋯⋯ 하하."

 그렇지만 그 때 본 미래가 찬란하고 아름다웠어⋯⋯.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리케이오스가 다시 집 밖으로 나온 것은 하데스의 미래를 읽은지 딱 여드레째 되는 날이었다. 한참 울어 퉁퉁 부은 눈가는 벌겋게 달아올랐고 태양같은 노란 눈동자는 빛이 죽어 퀭해 보였다. 일주일 내내 집 앞에 진을 치고 앉아 문을 두드리던 친구 두 명이 걱정으로 연달아 쓰러질만한 몰골이었다.

 그런 상태였음에도 그는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기로 했다. 가야 할 방향을 정했으니 남은 건 다리를 움직이는 것 뿐이다.


🌠🌟🌠


 에메트셀크가 대의사당을 뛰쳐나왔다. 14인 위원회로서 지켜야 할 품위를 보이지 않는,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아젬은 이미 대문을 넘어 저만치 멀리 걸어간 상태였다. 가면을 거칠게 뜯어냈던 탓에 로브자락은 심하게 흐트러졌고, 흔들거리는 발걸음은 평소와 같았으나 되려 위태로워 보였다. 속도가 빠르지 않았던 덕분에 에메트셀크는 그를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다. 팔을 잡아 아젬을 멈춰 세운다. 묶은 머리가 흔들렸다.

 "아젬⋯!"

 아젬이 에메트셀크의 당황과 두려움이 섞인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여상한 미소와 함께 말하기를.

 "아젬이라고 부르면 안 되지. 관두고 나왔잖니."
 "⋯ 그런 억지가 통할 것 같아? 아젬, 아무리 너라도 이번 사고는 그냥 넘어가지 못 할 거다⋯! 책임은 어떻게 질 셈이지?"
 "사임하고 뛰쳐나온 위원한테 바라는 게 많구나."
 "아직도 그런⋯⋯!"

 말을 하던 한중간에 문장이 끊긴다.

 "⋯⋯ 설마 진심이었어?"
 "⋯⋯."
 "진심으로 아젬의 자리를 관두겠다고⋯⋯?"

 리케이오스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웃고 있었다. 그럴수록 다급해지는 쪽은 에메트셀크였다. 두 손으로 아젬의 양 팔뚝을 잡은 채로 외친다.

 "다시 한 번 생각해봐라! 이런 시기에 우리 14인 위원회에 공백이 생기면 얼마나 혼란스럽겠어? 게다가 네 능력은 귀중해, 아젬. 미래를 보는 능력이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데에 얼마나 큰 보탬이 될지 너도 모르지는⋯⋯"
 "그게 아냐. 하데스."
 "사람의 이름을⋯⋯"
 "이럴 때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야.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를 나는 결국 깨우치게 해주지 못 했었지만⋯."
 "아젬, 제발 내 말을 들어⋯!"
 "하데스. 내 이름 불러줘."
 "아젬!"

 겹쳐지던 목소리는 에메트셀크의 비명같은 외침으로 끝이 났다. 거친 숨소리가 정적을 대체한다. 두 사람은 눈을 마주한다. 한 사람은 불안을, 한 사람은 슬픔을 무언으로 전한다.
 리케이오스가 입술을 달싹인다.

 "⋯⋯ 너한테 해줄 말이 없구나. 미안해."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겨우 이런 것밖엔 없다.
 에메트셀크가 두 손을 떨어뜨렸다.

 "⋯⋯ 나를 봐서라도 남아줄 수는 없는 거냐."

 아젬이 고개를 들었다.

 "이 곳이⋯⋯ 우리가⋯⋯ 너와 맞지 않는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위원회의 이번 결정에 반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네 평소 하는 말을 생각해보면⋯ 납득은 안 하겠지만, 이해는 할 수 있어."
 "⋯⋯."

 에메트셀크 본인은 자신이 하는 말에 자신감이 없어보이는 모습이다. 리케이오스는 이런 말에 붙잡힐 사람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엿보인다.

 "그래도 나는 네가⋯⋯."

 그 표정을 보며 리케이오스는⋯⋯.

 광장으로 이어진 가로수길에 저녁노을의 붉은색이 내려앉았다. 웅성이는 시민들의 말소리는 차츰 잦아들던 차였고, 선선한 저녁 바람은 로브 아래로 숨어 있던 다리를 이따금 내보여주다가 떠나가고는 했다.
 리케이오스는 지금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 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노을색으로 물든 하데스의 옆얼굴을 그는 영원히 그리워할 것이다. 수많은 시간이 흘러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 뒤라고 할지라도.

 리케이오스는 지금 느끼는 감정에 온몸을 맡기기로 했다. 눈 앞의 친구의 품으로 자신의 몸을 던졌다. 한 아름 가득 미련을 그러모은다.

 "이것 하나만 기억해줘."

 하고싶은 말은 정말 많았다. 자신 또한 이런 운명을 바꾸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을 했다, 자기도 친구들을 떠나기 싫다, 끝까지 남아 너희를 막고 싶다, 혼자 죽으러 가기 싫다⋯⋯. 그런 수많은 미련을 제치고 나오는 본심은 딱 하나.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바뀌어 나 또한 변해버린다고 할지라도⋯⋯ 언제나 너를 정말 좋아할 거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말해보는 애정이었다.
 품에서 떨어지는 리케이오스를 붙잡지 못 했다. 방금 들은 말의 충격에서 미처 헤어나오기도 전에 리케이오스가 도망치다시피 하며 자리를 떠나갔다. 에메트셀크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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