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어딘가의 초차원 오픈 카톡방
| 화로 | |
| 상태 메세지 | |
| 퇴마, 주술, 기타 등등 | |
| 최초 레스 작성 일시 | |
| 2022-08-21/15:01:56 | |
| 알아야 하는 정보 | |
| 본명 | 양현무 |
| 나이 | 19세 |
| 성별 | 남 |
| 국적 | 대한민국 |
| 종족 | 인간 |
| 생일 | |
| 직업 | 주술사 |
| 상태 | 생존 |
2. 특징 ¶
'무항산 무항심'을 좌우명 삼아 돈으로 살고 돈으로 움직이는 성격.
제주어를 익숙하게 구사한다. 티는 안 나겠지만 그렇다.
눈 색은 능력을 쓸 때에만 변한다. 호박색 외에도 변화한다.
키는 낮에 재면 180, 밤에 재면 179.
제주어를 익숙하게 구사한다. 티는 안 나겠지만 그렇다.
눈 색은 능력을 쓸 때에만 변한다. 호박색 외에도 변화한다.
키는 낮에 재면 180, 밤에 재면 179.
6.1. 잡담방에서 풀린 설정 ¶
- More
- "키갈은 조건 하나만 맞추면 돼. 얼굴! 얼굴은 중대사야."
사랑하는_사람에게_미움_받게_된다면_자캐는
쩔쩔매는편. 생각보다 찐사랑에는 순애보
자캐의_소유욕
귀신 잡아먹기
자캐를_웃게하는_것은
귀여운 사람
#자캐의_서사로_라노벨_식_이름짓기
화로: SSS급 무속빌런 성공신화
자캐가_입밖으로_내지_못할_진심은
사실 못됐거든. 쓰레기?
깊은_우울감에_빠진_자캐는
주저앉아서 계속 머리만 부비적거린다
자캐는_칼_총_어느쪽
한국에서 총은 못 구하잖아...
첫 고백은 6살때 받아봤다. 이후로도 매년 받았다고.
초콜릿으로 만들었는데 달지 않고 카카오 풍미가 잘 살아있는 음료를 좋아한다.
화로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가_흑막이고_정체를_들켰다면_하는_말
아, 좀 늦게 알아차리지. 넌 매너가 없냐?
자캐의_눈물이_비가_되어_내리는_세계가_있다면_그_세계의_평균_강수량은
남한이랑 비슷할거 같은데
자캐가_흘린_눈물이_보석이_된다면
아쿠아마린? 보석 잘 모르는데
유당불내증 있음.
7. 독백 ¶
- 전학, 만남, 위화감
-
제주공항 착륙 후 소녀는 내내 야릇한 위화감을 느꼈다. 택시를 타고 서귀포시로 향하며 그 위화감은 더욱 뚜렷해졌다.
‘강력한 악귀가 없어.’
원래라면 강한 악귀, 원귀도 당연히 존재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이 섬은 이상했다. 육지에서 소녀를 진땀 빼게 했던 강력한 악귀나 원혼, 요괴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사람을 귀찮게 하는(운이 나쁘면 일가족을 죽이거나 사고의 수렁으로 빠트릴지도 모르는) 잡것들은 분명 사방에 널렸지만.
누군가 체로 거른 듯 대형 사고를 저지를 법한 존재들만 쏙 빠져 있었다. 육지에서 익명의 유능한 도사로 활동하며 이런저런 악귀를 보아온 국소희에게,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희한한 풍경이 심한 이질감을 일으켰다.
“이상한 일이네.”
머릿속에서 백호의 저음이 울렸다. 소희는 침착하게 가방을 뒤져 꺼낸 에어팟을 끼웠다. 그녀는 새삼 허공에 말해도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영화나 드라마의 귀신을 보는 사람들이 굳이 귀에 이 소품을 끼지 않고 말하는 이유가 늘 이해되지 않았다.
“다른 건 많은데. 왜 그런 것만 없을까요? 제주도라?”
“귀신이 많을 뿐이지 제주도라고 육지와 다를 건 없어. 오히려 전체 수가 많으니 악귀의 수도 더 늘어야 해. 이상하다. 아무래도 토착신에게 물어봐야겠어.”
“그래요 그럼. 일단 짐부터 풀고.”
소희와 백호는 처음 쉽게 원인을 밝히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해결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더라도, 우선 이렇게 이질적인 현상은 원인을 알기 쉬우리라 본 것이다. 그들은 일이 한참 걸리겠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냈다. 이상한 원인이 이상한 결과를 만든다. 이상한 원인은 이해하기 어렵기에 당연히 이 일도 알기 어렵다.
그들은 숙소에서 짐을 풀고 거의 반나절을 신들과의 대화에 쏟았지만, 신들 중 누구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알아낸 사실은 둘뿐이었다. 사건은 최근 몇 년 사이 발생했다는 것, 한 번에 전부 사라지지 않고 나날이 사라지다 여기까지 왔다는 것. 그들은 슬슬 미제 사건과 만난 기분을 느꼈다.
다행인 점은 소희는 19세였고, 그 나이대에 으레 그렇듯이 답은 학교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국소희: 화로 스진에서 중요한 모브. 도교적 도술에 해박함.
*탈주가 전문가가 아니므로 무속, 도교, 남아메리카 신화 등 고증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음.
- 카페에서 만나
-
현무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2층짜리 개인 카페는 서귀포시에서 해안가와도, 번화가와도 거리가 있는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외지인이라면 위치가 애매해서 장사가 되지 않으리라 여기겠지만, 되려 그 어중간한 자리 때문에 늘 손님이 적당한 수로 꾸준히 찾아왔다.
사람이 많이 오지는 않아도 꾸준한 유입이 있는 장소. 현무의 어머니는 애매한 것의 쓸모를 기가 막히게 발견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 묘한 눈치는 영감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위치선정 외에도 자기 센스를 십분 발휘했다.
인테리어는 포근하지만 질리지 않을 정도, 현관 앞에는 돌하르방을 놓아 포토존처럼 꾸몄고, 늘 해외의 카페 유행을 인터넷으로 좇으며 외국인과 내국인 모두 만족할 법한 메뉴를 개발했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주말에는 현무를 얼굴마담으로 세워두었다.
소희 또한 카페 인테리어를 열심히 둘러보고 있었다. 구석진 곳에서 백호가 물끄러미 골동품을 보고 있었다. 현무가 부적 삼아 둔 것으로, 조그만 도깨비가 열심히 발발대며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움직임에 딱히 이유는 없지만, 그 멍청함을 구경하는 게 보이는 사람에게는 제법 재미있는 일이다. 백호는 반복되지만 미묘하게 변하는 행동들을 흥미있게 구경했다.
“학생이 일반계로 오면 공부나 할 것이지, 무슨 도술에 관심을 가진대?”
현무가 한참을 픽픽대다 겨우 입을 열었다. 소희와 현무는 화요일 밤에 만났다. 운이 안 좋았다. 처음부터 소희를 봤으면 경계하기라도 했을 텐데, 하필 분신을 만들어놓고 떠난 날 전학을 온 것이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DIY라면 전문가에게 들통나기 마련이다. 소희는 그날 독하게도 분신과 현무가 만날 때까지 쫓아왔다. 현무는 어떻게든 엮이지 않으려 했지만, 소희는 넉살 좋게 카페에 와 현무와 수행평가 계획을 이야기하러 왔다고 어머니에게 말해 자리를 차지했다.
“야매로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데?”
소희가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홀짝거렸다. 현무는 지기 싫어 받아쳤다.
“나는 학생부 채우고 있거든? 학생의 본분을 잘 지키고 있거든?”
“너 성적 바닥이잖아. 아, 성적으로 음덕 채우기 그런 거야?”
“야, 성적은 어떻게 알았어?”
소희는 말없이 백호를 가리켰다. 현무의 표정은 점점 고까워졌다. 소희는 얼굴을 못 본 체 편안히 있었다. 기세등등한 그녀의 본론이 드디어 튀어나왔다.
“나는 네가 왜 기운이 나오질 않는지가 궁금한데.”
현무를 처음 본 날, 소희와 백호는 이 애한테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확히는 소희가 먼저 알아차리고, 백호는 소희의 말을 듣고 알아차렸다.
백호는 현무의 존재를 느낄 수 없었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소희는 그나마 현무를 볼 수 있어도, 현무에게서 사람의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소희의 눈에 현무는 돌이나 물과 같은 무정물과 같이 아무 기운도 없이 존재했다. 잘 만든 로봇 같기도 했다.
“사람인 이상 기운이 분명히 있어야 할 텐데 말이야. 이상한 일이네?”
“내가 취조받으러 온 줄 알아? 왜 나한테 그걸 물어?”
“사실은 조사하고 있는 일이 또 있거든.”
소희는 자신이 제주도에 온 이후 느낀 위화감, 수상쩍음, 조사 과정에서 발견한 이상함을 이야기했다. 그중 현무가 범인이란 이야기는 없었다. 그래도 눈치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라면 현무가 사건과 유관하다 느낄 수 있을 이야기였다. 당사자인 현무는 속내를 더욱 잘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연관되어 있다?”
“아마도 그렇겠지?”
“그게 말이 사실이면 여기 무당들은 호구냐? 너도 느낄 기운을 못 느껴서 날 의심해보지 않았겠어?”
소희는 말없이 음료를 들이켰다. 이거 맛있네, 괜한 딴소리로 주의를 돌린 소희는 다시 현무를 바라보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도 건물이 있더라고. 명경지수센터.”
현무는 잠시 움찔거렸다. 소희는 미동을 놓치지 않았다.
“아나 보네? 뭐 하는 집단인지.”
“그냥 유행하는 명상단체잖아.”
“뭐 하는 곳인지 정확히 알잖아?”
현무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명경지수센터, 본명은 명경지수 정신 개발 자아 관리협회. 최근 몇 년 새 뜨기 시작한 단체다. 유명인들도 제법 많은 사람이 가입한 단체였다.
“알 바 아닌데.”
“거짓말.”
소희가 얼마 남지 않은 음료를 쪽쪽 빨아댔다. 현무는 저러다 얼음까지 빨아먹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바닥의 바닥까지 맛있게 음료를 해치운 소희는 가벼운 대화를 나눈 사람처럼 일어섰다.
“나머지 얘기는 다음에 하자. 머리 아프겠다. 내일 보자?”
현무는 침묵으로 답했다. 유리문을 열고 떠나는 소희를 배웅한 현무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단체의 이름을 곱씹었다.
‘명경지수센터.’
- 왜 우리가 이런 걸 봐야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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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고까운 첫 만남이었어도 현무와 소희는 나름 무난한 학교생활을 보냈다. 일단 학교에서 매일 만나는 사이이기도 하니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자는, 어느 정도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소희도 대답하지 않는 걸 억지로 추궁할 방도는 없으니 둘은 미묘한 긴장감이 유지되는 상태로 아슬한 대치를 유지했다.
물론 학교가 끝나면 소희가 집요하고 은밀하게 현무를 따라다니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현무는 필요한 정보를 감질나게 흘리며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사실 현무가 피할 방법은 많았지만 현무로서도 일상이 무료해진바 또래의 샤먼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났다. 또 소희는 복잡한 이유가 없으면 괜찮은 아이였다. 현무는 치졸하고 가장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이유로 관계 유지를 결정했다. 예쁘잖아.
소희는 갑자기 날아온 연락을 해괴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현무가 보낸 카톡이다. 웬일인지 만나자는 약속을 먼저 잡았다. 소희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이유는 만나서 듣기로 했다.
소희는 의아해하며 출발했다. 천천히 걸으면 되겠지. 굳이 집에 틀어박혀 있기보단 산책 겸 외출하는 게 나아 보였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소희의 눈에 특이한 모습이 보였다. 카페 안이 바글바글하게 차 있었다. 밖에서 기다릴지 고민하며 기웃거리던 와중, 통유리 너머로 재미있는 광경이 보였다.
현무가 앞치마를 입고 바삐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래서 늦게 오라고 한 거군. 소희는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보았다. 거의 12시가 되어간다. 아마 12시면 일이 끝나나 보네. 소희는 모르는 척 넘어갈지 그냥 난입할지 잠시 고민했다. 불쌍한데 쉬라고 하지 뭐. 현무가 앞치마를 벗고 나와 주위를 둘러볼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금방 서로 눈이 마주쳤다. 현무의 손에 음료가 두 잔 들려 있었다. 옷들이 죄다 비싸 보였다. 소희는 문득 대체 옷에 얼마를 쓰는 건지 궁금해졌다.
“자.”
“오, 고마워. 이게 뭐야?”
“설문대할망의 첫사랑.”
“...이름이 왜 그래?”
현무는 놀러 온 관광객들이 인스타에 올리면서 자기들끼리 공유할 만한 메뉴명이 좋다고 답했다. 다음 메뉴는 ‘돌하르방과 왈츠를’이라는 말에 소희는 입을 다물었다. 메뉴명 따위보다 중요한 질문도 있었으니.
“그래서 웬일로 먼저 불렀어?”
“감이 안 좋아서.”
현무가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현무는 최근 신탁이 매우 심란하게 나왔다고 말했다. 운이 나쁘면 범죄와 엮일지도 몰라 아무래도 혼자 가기는 그러니, 같이 가서 조사할 필요가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도사잖아. 어차피 일이랑 엮일 거라는 기분이 들어. 음료값이라고 생각하시던지.”
“이래서 주신 거였구만. 왠지 엑스라지더라.”
현무가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소희는 한숨을 쉬었다. 출발이나 하자, 빨리. 둘은 한라산을 향해 걸었다. 가면서 왠지 ‘설문대할망의 첫사랑’이 자꾸 떠올라 소희는 몇 번을 이상한 사람처럼 피식거렸다.
관음사 코스 앞에서 현무는 잠시 멈추어 섰다. 눈꺼풀을 무겁게 감았다 뜨자 현무의 눈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그건 뭐야?”
“이러면 뭘 찾을 때 좋아. 루미놀 반응처럼 어딘가 뭉쳐서 빛나 보여.”
현무는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이번에도 비싸 보이는 소품에 소희는 다시 돈을 얼마나 쓰는 건지 궁금해졌다. 이것이 정녕 청빈의 나라 조선의 후손이란 말입니까. 소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느 정도 걷고 난 후, 현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코스에서 이탈한 현무가 어서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소희가 뒤따라갔다.
“냄새가 느껴져.”
소희가 먼저 말했다. 불길한 장소는 악취가 머무른다. 생선이 썩는 듯한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소희는 설문대할망의 첫사랑을 올라오며 다 마셔 다행이라고 느꼈다. 현무는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영감이 없다면 특이할 것 없어 보이는 장소에 현무가 멈추어 섰다. 소희는 그곳에서 악취의 근원이 흘러나옴을 느낄 수 있었다. 현무가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백호로 파봐.”
“백호님. 여기 좀 파주세요.”
내가 포크레인인 줄 아냐 이 녀석아. 백호가 투덜거리며 나타났다. 냄새만 없었다면 땅을 파는 모습이 제법 고양이 같다고 웃었을 텐데. 이런 악취는 육지에서도 쉽게 맡지 못했다. 소희는 처음에 저주가 걸렸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현무와 백호가 심각하게 굳는 걸 보고 자연히 더 심각한 상황에 대해 상상하게 되었다. 소희는 떨리는 마음으로 구덩이에 다가갔다. 그리고 한동안은 현무와 백호가 앞서 했던 행동을 반복했다. 돌처럼 굳기. 구덩이 속에는 한자가 빼곡히 적힌 천으로 빙빙 싸인 사람 형태의 무언가가 있었다.
“야, 이거, 설마, 그거야?”
“아니라고 하고 싶다.”
“한번 확인을...”
뻗은 손을 잡아챈 현무가 소희를 노려보았다. 소희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손대면 복잡해져. 일단 이대로 분석해보자.”
“경찰 먼저 불러야 하는 거 아냐?”
“경찰에 넘어가면 절차를 밟아야 해. 넘어가도 조사할 방법은 있지만 여기서 알만한 것들은 알아둬야 해.”
“알았어.”
“이거 읽을 수 있어?”
“바닷가에서 한풀이로 굿을 할 때 부르던 노래야. 하지만 이상해.”
“뭐가?”
“제주도에서 쓰는 노래가 아냐. 북부지방, 못해도 중부지방이야. 남부에선 아예 다른 노래를 불렀어.”
“씨,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거 그래도, 오래돼 보이는데 일제 시절에 일어난 일은 아닐까?”
“아냐. 길어봐야 몇 년이야. 사람 먹던 신이 하는 말이니 정확하겠지.”
“너, 뭘 받들고 있는 거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아마 한국인은 아닐 거야. 키도 평균보다 작고, 제물이라면 굳이 한국인을 쓸 이유가 없어. 아마 불법체류자겠지. 그리고.”
화로의 눈이 빛나기 무섭게 시신에서 녹색 빛이 나왔다. MRI 촬영처럼 속이 그대로 보였다. 안의 시신은 말라붙어 있었다. 소희는 그것을 본 기억이 있다. 미라. 시신은 미라화가 진행되어 있었다.
“주술, 제물. 미라화까지 마쳤어. 분명 이런 일에 상당한 준비가 된 놈들이야. 굳이 한라산에 묻은 것도 어떤 이유가 있어서겠지.”
“명경지수센터일까?”
“걔네는 사이비지 살인마 주술단체가 아냐. 그리고 걔네는 이런 주술 안 써.”
“그렇다면 이런 역겨운 짓을 할법한 단체가 또 있다는 거야?”
“그렇다고 봐야겠지.”
둘의 말이 멎었다. 서로 생각을 정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소희가 먼저 정적을 깨트렸다.
“경찰에 넘어가면 어떻게 조사할 거야?”
“제주지검에 아는 사람이 있어. 부장검사니까 어느 정도 시간을 내줄 수 있을 거야.”
“어떻게 아는 사이야?”
“점을 봐줬지. 자식이랑 본인 연애운. 역시 그쪽이 신뢰도 쌓는 데는 최고라니까.”
귀신보다 무서운 게 인맥이지. 현무가 김빠지게 킥킥거렸다. 소희는 한심함 반 부러움 반으로 현무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세속적인 인맥이 있으면 유리할 것이다. 도사로서 속세와의 연을 최소화해야 하는 소희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현무가 악취로 코를 막느라 작게 심호흡하고 말했다.
“알 만한 건 다 조사했으니 경찰 불러. 난 부장검사한테 전화한다.”
“뭐라고 하게?”
“주술이니 자문 겸 분석 결과 공유하자는 말이랑, 어지간한 사건이 아니니 언론에는 나중에 알리라고.”
- 무당도 수사에 끼워주나요?
-
국어영역이 끝나고 쉬는 시간, 소희는 속인지 손톱인지를 잘근거리며 씹었다. 주위 친구들처럼 답을 맞히지도, 다음 영역을 준비하지도 않았다. 국어 시간에 겨우 붙들었던 집중이 깨지자 소희의 머리에 남은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지금쯤 의기양양하게 자기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양현무. 쓸데없는 라이벌 의식이긴 하지만 소희는 보기보다 유치했다.
처음 현무가 자신이 먼저 해부되기 전에 시신을 조사할 테니 빠져있으라고 할 때, 소희는 여러 대답을 생각했다. 나도 잘 볼 수 있어. 미라는 사진으로도 많이 봤잖아. 그리고 기왕이면 둘이 조사해야 얻을 게 많지. 뭐, 현무도 그 정도 대답이야 예상했겠지만, 더 나은 답변도 있었다. 하지만 현무가 던진 이유는 반박할 수 없었다.
“모의고사잖아. 검사 도움으로 몰래 조사하는 거니까 해부를 뒤로 미뤄서도 안 돼. 가능한 시간은 오전뿐인데 그때 모의고사 볼 거 아냐? 나야 모의고사는 자는 시간이라 상관없지만 넌 아니잖아.”
소희는 결국 시험을 선택했다. 이러니까 신선이 못되지, 쯧쯧. 백호가 혀를 찼다. 그나마 백호와 시야를 공유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쉬는 시간에 현무가 조사에 들어간다. 백호는 부장검사를 따라간다. 현무는 보이지 않지만, 시신은 잘 보이니 상관없다. 소희는 엎드려 얼굴을 파묻었다. 감긴 눈 너머로 실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커다란 철침대 위로 미라가 누워 있었다.
현무와 부장검사는 조금 일찍 만났다. 충분히 도움을 받을 입장이지만 그냥 가면 모양새가 별로일 것이다. 간 김에 최근 고민을 해결해줄 심산이었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거의 큰아버지뻘인 부장검사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어유, 오래간만입니다. 도사님.”
“예. 잘 지내셨지요. 어려운 부탁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쉬운 말씀 하십니다. 제가 얼마나 도움을 받았는데... 사건은 언제쯤 공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현무는 구석진 곳에서 커피를 살살 타며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흘러가는 걸 조망해야 좋은 경우도 있지요. 가급적 빨리 해결하려고 왔지마는.”
“우선 여기서 쉬고 계십시오. 꽤 일찍 오셨군요.”
“예. 사소한 선물을 드리고 싶어서요.”
부장검사는 선물이라는 말에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참 속이 투명한 사람이란 말이야. 저래서 법정 생활은 어떻게 했을지 궁금해지는 사람이었다. 현무는 커피를 들이켜고 말했다.
“요즘 일이 잘 안 풀리시지요? 그러니까, 승진운이 너무 막히지 않았습니까.”
“예, 예. 어째 모르는 게 없으십니다. 예. 이러다가 부장으로 퇴임하는 거 아닐까 걱정될 지경입니다.”
“뭐, 부정한 사람이 잘돼도 순리가 영 아니지요. 김 검사가 자리에 맞지 않아 보입니다.”
부장검사가 체한 사람처럼 콜록거렸다. 현무는 물이라도 건네줘야 하나 고민했다. 이내 기침이 멎자 부장검사는 커진 동공으로 현무를 쳐다보았다.
“뭐, 뭐라도 아십니까?”
“돈 냄새가 지독하게 나는군요. ㅇㅇ뉴스 기자중에 송민아라는 사람이 있는데 괜찮은 사람입니다. 아마 말하면 잘 해결해 줄 겁니다.”
“문제는 생기지 않을까요?”
“문제 생기면 말을 안 했지요.”
부장검사는 연신 감사하다며 꾸벅거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백호는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고민했다. 현무의 말만 빼면 아무리 봐도 부패한 검사와 무당의 합작으로 보였다. 백호는 나중에 소희에게 물어보라 하기로 했다.
다행히 백호도 들어왔군. 현무는 시계를 다시 한번 보았다. 이제 탐정이 될 시간이다. 현무가 부장검사에게 말했다.
“아직 따로 조사된 건 없지요? 부검은 언제쯤 진행됩니까?”
“가급적 빨리 해도 며칠은 걸릴 텐데, 급하십니까?”
“아닙니다. 괜히 앞당기면 의심받겠죠. 천은 따로 잘 보관되었죠?”
말을 마치고 현무가 천을 들춰냈다. 시신의 표정은 생각대로 끔찍했다. 검사는 감탄하듯 신음을 흘렸다.
“검사 인생에서 이렇게 끔찍한 표정은 오랜만입니다.”
“굶어 죽었거나, 다른 쪽이든 곱게는 죽지 못했을 겁니다.”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또박또박 말해주세요. 염매라고.”
검사는 고분고분 잘 발음했다. 염매. 백호 또한 일그러진 표정으로 시신을 바라보았다. 염매란 과거 어린아이를 굶겨 죽여 만들어낸 주술을 말한다. 하지만 이 시신에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깔끔하게 빠진 악의, 지나치게 깨끗한 원념. 이미 저주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더불어 이것은 염매와도 다른 점이 많다. 백호가 입을 열었다.
“염매와는 다른 점이 많지 않으냐? 사람을 쓴다는 점만 같아 보일 지경이구나. 그러고 보니 처음 발견했을 때도.”
“노래가 달랐지요.”
부장검사가 현무의 말을 대신 전했다. 부장검사는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신이 특별해진 기분으로 은근한 뿌듯함을 느꼈다. 부장검사가 이어 실제로는 현무가 어디선가 먼저 했을 말을 전했다.
“듣고 있냐 국소희? 쓰는 노래도 제주도가 아니고, 주술도 이상해. 뭐 하는 놈들인지 몰라도 어지간히 미친 거야. 어쩌면 조선 때부터 이 짓을 해서 목숨을 이어갔을지도 몰라. 비밀결사 같은 느낌이지.”
“다 듣고 있다.”
소희의 말이 백호를 통해 흘러나왔다. 현무는 쭉 시신을 바라보았으나 특별히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현무는 깊게 한숨을 쉬고 검사에게 말했다.
“나머지는 전문가가 해야겠네요. 부검 결과 나오면 알려주세요. 자료가 많을수록 좋습니다. 나머지는 부검 결과를 보며 생각해야겠어요.”
“알겠습니다.”
현무와 검사는 자리를 정리하고 나왔다. 누가 왜 저지른 범죄일까. 시신이 다른 산들에도 묻혀 있을까. 하필 제주도에 연달아 미치광이들이 찾아오다니 골이 아플 지경이었다. 모처럼 모의고사에도 쉬지를 못하다니. 현무는 서둘러 한라산으로 향했다.
- 교언영색
- 교언영색(巧言令色): 아첨하는 말과 알랑거리는 태도.
화로는 서울에 며칠을 붙어있었다. 하루종일 쏘다녔다. 서울 구경을 위한 여행은 아니었다. 화로는 산, 강, 공사장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다. 가급적 인적이 드물고 거친 장소일수록 좋았지만, 서울이 워낙 쥐 잡듯 개발해 찾기가 쉽지 않았다.
"시X, 시X! 차라리 지방을 돌았어야 했는데. X선비들이 유학이랍시고 조선 내내 부숴먹었구만!"
화로는 욕을 내뱉으며 으슥한 산을 기어올랐다. 중간에 몇 번 발을 헛디딜 뻔한 적도 있었다. 샛길을 따라, 우거진 풀을 헤치며 나아갔다. 마침내 화로는 열여덟 번의 등산 끝에 바라는 것을 찾아냈다.
'이거다.'
화로는 앙상하게 죽어가는 나무 앞에 섰다. 평퍼짐하고 매끄러운 돌이 놓여있었다. 화로는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원시안진 보고만령 악독진관 토지기영
좌사우직 부득망경 회향정도 내외숙청
각안방위 비수단정 태상유명 수포사정
호법신왕 보위송경 귀의대도 원형이정
급급여율령..."
말을 마치자 차가운 바람이 멎더니, 나무가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무 위에 앉은 영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작고 허약해 보였다. 세상으로부터 밀려나 보이지 않는, 서낭당조차 잊혀진 이곳에 숨은 혼령들. 그들 중 화로가 찾는 존재가 있었다.
"여기 역병신(疫病神)이 누구냐?"
아무리 쇠약해져도 신은 신, 냅다 반말을 갈기는 조그만 인간이 불손하게 구니 심기가 비틀렸다. 나무에 앉은 신 중 수염이 길게 난 노인 형태의 신이 크게 외쳤다.
"이놈! 서낭당에 찾아왔으면 예를 갖춰 술이나 내올 노릇이지 어찌 방만하게 구느냐!"
화로는 피식, 비웃음 섞인 웃음을 드러내곤
"어, 미안한데 이제 미성년자는 술 못사. 하여튼간 세상에서 밀린 틀딱 귀신들은... 너, 역병신 아니지?"
"이놈이!"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신이 몸에 불을 두르고 내려왔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무리하는 듯 보였다.
"내 네놈은 데리고 떠나주마!"
"그럴 용기도 없으면서 허세는..."
화로가 손을 뻗었다. 코앞에 다가간 신의 몸 속을 휘젓는 듯했다. 사람이었다면 심장이 있을 부위에 손을 뻗은 화로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신이 고통으로 찬 신음을 내며, 몸에 두른 불꽃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머저리같이 도망친 주제에 까불지 마! 어차피 역병신 아니면 필요도 없어. 자, 너희들도 잘 생각해서 대답해. 여기 역병신이 누구지?"
화로가 붙잡은 신은 마침내 사라지고, 재조차 남지 않았다. 역시 약해빠져서 신력이 바닥이군. 주먹을 바라보며 내뱉었다.
"이, 이자가 역병신이오."
치졸한 귀신 하나가 초라한 거지꼴의 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역병신은 심란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지만, 이미 나무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빨리 내려와. 셋 센다. 하나, 둘..."
"아, 알겠소! 내려가겠소!"
역병신이 화로 앞에 서 오들오들 떨었다. 키가 작아 화로의 반 정도 되는 모습이었다. 화로는 쭈그려 앉았다. 음흉한 미소가 얼굴에 떠올랐다.
"자, 힘들겠어. 그치? 마마(媽媽)가 퇴출되고 완전히 나가리가 됐잖아. 이거 봐, 사라지기 싫어서 이런 추레한 거지꼴 서낭당에 빌붙어 사는 신세라니. 서울로 나가봐야 텃세에 뭐 하나 하지도 못하지. 이 얼마나 한스러운 일이냐, 안 그래?"
화로는 슬쩍 다른 귀신들에게 손을 휘적여 볼일 없다는 신호를 보낸다. 귀신들이 쏜살같이 사라졌다. 화로의 말을 듣던 역병신은 분하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이제 남은 신들도 잡귀나 돼서 연명하는 신세였다.
"자, 그런데 말이야. 천연두는 아니지만 비슷한 방법이 있어. 너는 산에 틀어박혀 몰랐겠지만 요즘도 병은 무섭거든. 아무래도 이건 붙은 귀신도 없어서 주인이 되기 딱 좋다 이말이지. 네가 원하면 도와줄 수 있어. 서로 상부상조 하는거야. 내가 지금 널 당장 소멸시킬 수도 있지만, 내 말을 들어주면 그러지 않겠지? 자. 어때?"
"마, 말해보시오."
역병신은 자신을 노리던 것이 아님을 깨닫고 크게 안도한다. 그러나 공손한 태도는 그대로였다. 망나니를 눈앞에 둔 죄수처럼.
"엠폭스(MPOX)라는게 있는데 말이지, 저 서양에서 건너 요즘은 한국에도 좀 돌고 있단 말이야. 이녀석이 천연두랑 비슷해서 마마신이 다루기에 딱 좋지. 듣기로는 지금 한국대병원에서 연구하고 있다던데, 네 능력이라면 빼가기 어렵지 않겠지. 이걸 갖도록 도와주지. 너는 날 도와 제주도에서 어디 하나만 감염시키면 돼."
"탐라를?"
"에이씨, 나대지 말고. 누가 제주도에 퍼트리래? 사람이 모인게 딱 분위기 좋은 장소가 있단 말이야... 거기를 좀 비워야겠어. 그러면 다음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역병신은 솔깃하면서도 망설였다. 자기만의 병을 얻는 것이란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러나 이 마귀같은 종자가 권유하는 일을 선뜻 할 이유가 있을까? 역병신의 계산을 파악한 화로가 능글맞게 속삭였다.
"자... 국왕도 두려워하던 존재가 누구더라? 집집마다 한번 병이 퍼지면 모두 너에게 빌었잖아... 곰보자국 난 얼굴들을 보며 비웃던 시절이 그립지 않아? 버릇없게 웬 서양인이 만든 주사 하나에 이렇게 밀리는 처지라니. 원통하다 원통해! 네가 이런 대우를 받을 존재인가? 엠폭스는 전염 초기니 잘만 하면 세계로 퍼질 수도 있는거야. 세계! 청나라를 흔들고 싶지 않냐? 이젠 황제까지 노려봐야지, 암. 사람이건 귀신이건 마음을 크게 먹어야 대성한다. 밀어줄 테니 한번 해봐, 한번. 어차피 이러다가 소멸할 신세잖아? 뭘 고민해?"
독사같은 혓바닥에 역신은 설득당하기 시작했다. 솔깃, 솔깃. 마침내 황제의 침실에 드나들 생각에 날아갈 듯 기뻐지고 만 것이다.
"하겠소, 하겠소. 무엇을 하면 되오? 말만 해 주시오."
흡족해진 화로가 씩 웃었다.
"간단해. 내가 지금 연구중인 대학을 알려줄게. 그곳에서 병을 빼와. 그 다음엔 뭐, 바이러스만 빼돌려 들고가면 그만이지. 그리고 슬쩍 감염시키는거야. 감염자가 늘어나면 권세가 커지니 너도 자유를 찾을 수 있지."
둘은 대화를 마치고 하산을 시작했다. 마음 속에 각자의 계획을 갖춘 채.
- 계획
-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이사야서 14:14
오르톨랑(Ortolan)에 대해 들어봤나?
프랑스 사람들은 오르톨랑을 먹을 때 천을 뒤집어썼다고들 한다. 너무 잔인한 음식이라, 신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물론 그게 효험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는 맛있는 것들은 항상 하늘의 눈 밖에 나야 먹을 수 있다는 거지.
태초의 인간이 먹은 열매도, 먹자마자 부끄러워 숨어 버렸잖아?
그러고 보니 그 열매가 달린 나무의 이름이 에츠 다아쓰 토브 워-라( עץ הדעת טוב ורע)인데 말이지. 풀어쓰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게 하는 나무'가 되거든.
영지주의, 카발라, 밀교, 부두술.
비밀스럽고 즐거운 것들.
현무가 처음 시도한 주술은 특별한 힘을 부여하지 않았다. 언제나 비밀스런 마술들은 오랜 숙련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현무가 찾아낸 비방은 단지 삼혼을 제거할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금지된 이유는 삼혼을 제거하고 운명의 실, 천망을 제거하기 때문이었다.
사주를 부정하고, 천기를 누설할 수 있고, 업보를 돌려받지 않고, 천망을 비웃을 수 있는 술수.
질서와 계보로 이루어진 나무의 세계에서 탈출해 차이와 반복의 세계로 가는 문. 현무는 법칙에서 벗어나고 자기의 재능과 욕망, 선구자들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걸어왔다.
그렇지만 원래 사람이 만족하고 끝내면 아쉽잖아?
요괴는 되기 싫어. 어차피 제약이 걸리는 건 매한가지야.
주술로는 한계가 있지. 갈증이 날 정도의 잔재주에 불과하다고.
그렇다고 아무 신이나 붙잡고 자리를 꿰찰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렇지. 있었지.
아주 오래 전부터 나라들을 움직이고
지금은 신봉자가 없어 굶주린,
그럼에도 아주 매력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자, 밥을 주자. 초대와 환대로 동방의 나라에 불러오자.
그리고 그가 가장 방심해 무방비할 때
모든 것을 가져가자.
나의 소유가 될 것들을.
- 조사
- 작은 여우가 거의 물을 건너가다가 꼬리를 적시니 이로울 것이 없다.
-주역, 미제未濟
폐쇄된 명경지수센터 앞. 소년소녀가 같이 서 있었다. 역신이 일처리를 잘 해줬군. 현무는 슥 건물을 올려보았다. 3층 건물이 넓은 부지에 총 다섯개. 가운데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는 건물이다.
"아마 녀석들도 준비는 꼼꼼하게 해 뒀을 테니, 오늘은 수색만 하는 거야. 무영부無影符 품에서 잃어버리지 마. 가급적 능력도 쓰지 말고..."
소희는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水가 불길할 정도로 넘쳐나. 이거 봐. 잔디도 겨우 목숨만 부지하는 꼴로 자라있잖아."
"지맥이 뒤틀리는 걸 보면 조만간 제주도 전체가 이 꼴이 되겠지. 이 인간들이 터주가 되면 어떤 꼴이 날 지."
이대로 내버려 두면 분명 강신에도 차질이 날 게 뻔하다. 수월하게 계획이 진행되려면 적어도 제주도의 터주는 현무 자신이 되어야 했다. 그 외에도 신의 자리를 꿰차는 작전에는 한 치의 변수도 있어서는 안된다. 굳이 소희에게 협조해가며 센터에 찾아온 이유였다.
"이건..."
유리문을 열자 음산한 기운이 뻗어나왔다. 이루 말할 데 없는 습윤함. 늪지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소름끼치네. 숨 쉬기도 힘들어."
"적의 입 속으로 들어온 꼴이야."
부채를 펼치고 영안을 틔우자, 색칠이 벗겨지듯 드러난 내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야."
"뭐가 있어?"
"벽이고 바닥이고 천장이고, 전부 빼곡하게 진이 쳐져있네. 그리고 이건... 전부 수水진이야. 그것도 극도로 수의 힘을 끌어내고 있어. 지하에 물길이라도 있나?"
"오행은 각자 상극이 있지만 어느 한쪽이 과하면... 넘치는 물은 불을 누르고 쇠는 녹슬게, 가둬두는 흙은 넘쳐 밀어내고 나무는 썩혀버리지. 이곳이 죽은 공간인 것도 무리는 아냐. 바닷속이나 마찬가지야."
"명상실이랍시고 거울만 달아놓은 것도 이해가 가네. 원래 거울은 체體는 금이지만 용用은 수잖아. 재질은 금속이어도 물처럼 비치니까. 아마 거울에도 진이 잔뜩 깔려 있겠지."
소희가 끄덕였다.
"그런데 굳이 수여야만 하는 이유. 짐작 가는 거 있어?"
"글쎄... 아직은. 이 녀석들의 의도가 뭔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제주도에 온 이유는 짐작이 가네. 사방이 닫힌 섬이니까. 굳이 물을 넘치게 하려면 여기가 가장 좋을 거야."
"하지만 제주도는 화산섬이야. 화가 과한 지역이지. 이렇게 공간을 떼서 진을 쳐놓을 수는 있어도 제주도 전체를 물로 채울 수는 없어."
"그래서 한라산에 염매를 묻어둔 거겠지. 땅의 기운이라고 해도 터주가 바뀌면 자연히 지맥도 성질이 변할 수 밖에 없어. 우리가 찾아낸 것보다 훨씬 많은 미라가 묻혀있을 거라고 보는 게 맞겠군.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문득 현무는 위화감을 느낀다.
"야. 그런데 이런 역오행진 말야. 원래 흔한 일인가?"
"나도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어. 애초에 이렇게 오행을 굳이 거스르는 일은 흔하지 않았어. 고독蠱術도 근본은 음기를 축적하는 천리에 따른 과정이야."
"역오망성이라는 건... 주로 서양에서 쓰던 방법 같아서."
"오컬트? 악마 소환이라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나?"
"결국 영가는 터가 필요하니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하려는 것처럼. 한반도의 터와 맞지 않는 신을 불러오기 위해서는 기반 작업이 필요하다. 그쪽도 이걸 노리고 있는 걸까.
"...일단 나가는 편이 좋겠어. 무영부가 있어도 너무 오래 끌면 흔적이 남을 게 뻔하니까."
- 폭설
- "제주도에 측정 이후 최대의 폭설이 내려 폭설주의보가 발령... 전문가들은 이상기후로 제주도 전체에 형성된 돔을 지목합니다. 박대기 기자?"
"네, 이곳은 제주시..."
유튜브를 껐다. 역대급 폭설, 확실히 그렇다. 아파트 현관을 눈이 막고 있을 지경이니까. 빌어먹을. 이게 다 그놈들 때문이야. 차라리 학기중에 오던가. 드러워서 진짜.
폰을 꺼내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02:00'
'죽어도 이걸 몸으로 뚫을 수는 없다. 절대로 안 된다고.'
엄마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다. 눈이 굳어도 온 가족을 동원할 게 뻔해. 안돼! 절대 안 된다고!
"눈이 이렇게 내렸는데 혹시라도 우리 가게 앞까지 왔다가 돌아가면 무슨 생각을 하겠니?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입원을 하든 여는 것. 그것이 의리다."
엄마는... 미친 사람일까?
아무튼 이대로는 절대로 안 된다. 나는 손을 뻗어 부채를... 아이씨 추워.
"以氣爲符 以聲爲橋 以影爲門
이기위부 이성이교 이영위문...
不爲災 不爲罰 唯爲證 唯爲現
불위재 불위벌 유위증 유위현
急急如律令
급급여율령..."
추워서 입술을 덜덜 떨며 끝까지 경문을 외우자, 따듯한 바람과 금빛이 주위를 둘러쌌다. 검은 깃털과 세 개의 다리, 불려나온 녀석이 몸을 감싸던 날개를 펼치자 주변의 눈이 빠르게 녹기 시작했다.
"야, 삼족오. 지금부터 눈들 좀 녹여봐라. 오늘 아침까지는 녹아 있어야 한다? 그래도 명색이 양신인데 할 수 있지?"
삼족오는 프르릉, 불만이 가득한 콧소리를 내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니가 불만이 있으면 뭘 어쩔 건데. 눈이 확연히 빠르게 녹기 시작한다. 음, 이정도면 충분히 녹아 있겠어. 자러 가야겠다.
- 귀정
- 天垂象,見吉凶
천수상, 견길흉
하늘이 징조를 드리워 길흉을 보인다.
《주역(周易)》 계사상전
영안을 뜨면 숨겨진 것들이 보인다. 신神, 괴怪, 귀鬼, 마魔 등. 그리고 살殺, 인연因緣, 업業 까지. 물 속의 뱀처럼 잠복해 언제나 인간과 함께 존재하는 것들.
주말 오후, 시내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멀리서 두 사람을 보았다면 사이 좋은 커플로 착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곧 둘은 서로에게 전혀 관심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음료를 주문한 소년 소녀는 테라스에서 한동안 빤히 행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야."
현무는 슬쩍 팔꿈치로 소희를 찔렀다. 소희가 귀찮다는 듯 팔로 현무를 밀어냈다.
"보여. 생각 중이잖아."
평화로운 교차로. 둘에게는 재난영화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사람들 사이사이로 하나, 둘... 적어도 삼할. 삼할의 사람들이 창백한 시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살을 맞은 채 돌아다니고 있다.
"야, 야. 양현무. 저거. 귀정이야?"
"아니. 아니야. 그보다 저건 시귀屍鬼술, 강시나 좀비에 가깝지.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을?"
"그 녀석들일까?"
"심증은 그런데. 어쩌면 그냥 제주도 지맥이 변하니 괴이가 꼬인 걸지도. 어느 쪽인지 모르지만 제대로 피곤하게 하는군."
안 그래도 심란한데, 현무는 짜증이 솟구쳤다. 서둘러 의도를 파악하고 상황을 통제하고 싶었다.
"백호는 소식 없고."
"응. 서울 쪽에서 조사 중이시긴 한데."
"첩첩산중이네."
쭈우웁. 빨대로 청포도에이드를 들이키며 화로는 머리를 식혀본다. 서둘러 제지해야 한다. 어떤 놈들이건, 어떤 이유로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이고 있건, 진압하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 이이제이
- 생사일여生死一如 삶과 죽음이 하나로 같다.
유채꽃마니아: 근래 제주도의 음기가 비정상적으로 강해졌습니다. 현지에서 TF팀 조성 중입니다. 전국 지부에서도 최우선으로 인력 파견 요청드립니다.
오리날다: 원인이 무엇일까요?
유채꽃마니아: 현재까지는 상고 시대 고독과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요한 신부님 말씀으로는 미국에서 유행했던 컬트와 유사점이 있다고 하는데, 자세한 조사를 위해서는 제주도 팀으로 부족합니다.
오리날다: 서울 지부에서 인력 파견 준비하겠습니다.
현무는 창을 닫았다. 산 너머 산이군. 커피를 휘휘 저으며 머리를 감쌌다. 안 그래도 준비도 부족한 와중에 제주도에 외부인까지 몰려오다니. 의식마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예羿의 화살. 그리고 다섯 개의 제단. 땅을 부정하고, 하늘을 부정하고, 빛을 부정하고, 온기를 부정하며, 인仁을 부정하여 다섯 개의 불로 이치를 부정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준비물, 네메아의 사자 가죽, 기린의 뿔, 미다스의 반지, 불쥐의 털옷, 만파식적을 모두 얻었고, 한라산의 중지重地에 터를 잡은 뒤, 테스카틀리포카를 불러낼 천 개의 제물, 이는 그간 영혼을 모아 준비했다. 의식의 모든 과정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성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천살을 받아 죽는 것은 현무 자신. 그리고 이대로 시간을 끌어버려도 죽거나 죽는 게 나은 상태가 될 것이다.
삼혼칠백을 태울 때는 몰랐으나, 이들은 본래 인간의 생 또한 깊이 간섭하는 것. 그동안은 어린 생명의 활력과 그간 소모해온 영혼이 뒷받쳐주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생기가 꺼져가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면 생명이 멎거나, 아귀의 도道만 남아 잡아먹고 빼앗는 살아있는 악귀가 될 일. 서둘러 생기를 채워야 한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잠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현무는 재빨리 명경지수센터의 홈페이지를 열었다. 홈페이지는 떡하니 팝업을 띄웠다.
'제주도에서 X월 X일 컨퍼런스 개최...'
만약 녀석들이 전부 낙인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한 가지 변화로도 모든 실이 엉키듯 파문이 퍼져나갈 것이다.
어쩌면, 운이 좋으면, 이들 모두의 혼을 하나로 엮는 데 성공한다면. 그리고 제주도에 있는 모든 세력이 충돌한다면.
현무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른다.
"푸흐흐...푸흡!"
언제나 하늘은 사활死活을 한 자리에 두는 법.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야. 국소희.'
카카오톡을 보냈다.
'TF 팀 들어가라. 전쟁 준비하자.'
- 장난
- 御釈迦が蜘蛛の糸垂らす
석가모니가 거미줄을 내려
遅くはないわ 御出なさい
늦지 않았소, 어서 나오시게
地獄の聲が耳を打つ
지옥의 목소리가 부추기네
踏み外すのも悪くない
길을 잘 못 드는 것도 나쁘진 않아
-토모나리 소나, 鬼ノ宴(귀신의 잔치)
헤드셋을 끼고 즐거운 음악 감상을 하는 와중에 벨소리가 울린다. 국소희군. 현무는 전화를 받았다.
"야, 너는 뭐 이런 한밤중에 전화를 하냐. 나 키 안 크면 어쩌려고?"
"너 어차피 이 시간에 안 자잖아. 그리고 급한 일이란 말야."
"뭔데."
"우리가 조사하던 거, 전문가 모셔 왔는데."
"으응-. 오컬트? 그거 사짜 아니지?"
"아니거든. 서울 교구에서 파견되신 분이야."
"어."
현무는 헤드셋을 내려놓고 전화를 받아들었다.
"뭔데, 뭐 알아낸 거 있대?"
"그래. 연금술이 맞고... 중세 시대에 유행했던 헤르메스학과 관련이 있어. 호문쿨루스 알지?"
"아. 그거. 강X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거."
수화기 너머로 한숨이 들린다.
"아이 농담이지. 파라켈수스가 만들었고... 그런데 그게 왜?"
"원래 연금술의 목적 자체가 황금이 아닌 건 알고?"
"아 그게 아니야? 아니 아니, 또 한숨 쉬지 말고."
"연금술은 원래 연단술(*불로장생의 단(丹)을 만들기 위한 도술)과 비슷한 목적이야. 황금이 완전한 물질이기 때문에 방법을 터득하면 인간 또한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거지."
"흐응. 그럼 남은 황금은 기부라도 해주나."
"...."
할 말을 잃은 모양이다.
"왜, 공짜 황금 좋잖아. 그래서 쟤네도 뭐 지혜를 얻고 그러고 싶대? 대학원 가라고 해. 사촌누나 보니까 사람에서 벗어나긴 하더라."
"농담할 기운이 나오니?"
"너는 젊은 애가 좀 웃고 살아라."
또 한숨. 현무는 수화기를 멀리 떨어트렸다.
"연금술 자체도 영지주의... 기독교와 대척점에 있는 방법론이지만, 이 경우에는 거기에서 나아가 악마 숭배와 관련이 있다... 그게 그분의 의견이야."
"뭐 그렇겠지. 멀쩡한 연금술사가 시체로 저주를 하고 다니겠어. 뉴턴도 연금술사잖아."
"뉴턴이 연금술사였어?"
"공부 좀 해."
"엿이나 먹어."
"으흐흐."
얘는 놀리는게 왜 이렇게 재미있냐, 현무는 키득거렸다.
"슬슬 감이 오지?"
"그래, 그래. 방에서 뒹굴거리는 나 두고 팔방으로 뛰느라 고생했다. 요약하자면 그 녀석들은 자기 초월을 하고 싶고, 방법은 인조인간 만들기에, 우리가 본 시귀술까지 고려하면 엮어놓은 사람들의 영혼으로 뭔가 구리구리한 짓을 해서 교주를 신으로 만들고 싶다, 이거 아냐."
"맞아."
"흠."
화로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본다. 할 일이 훨씬 수월해지겠군. 낙인 찍힌 영혼들을 알아서 모아줬으니 나는 두 세력이 충돌했을 때 충분히 힘이 빠지면 제물로 바쳐버린다.
이거 봐.
나쁜 짓이 이렇게 즐거운데 누가 착하게 살고 싶냐?
- 용호상박
龍戰于野 其血玄黃
두 마리 용이 들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 누르다.
《주역(周易)》, 곤위지
현무는 쭉 팔을 뻗어 기지개를 편다. 방금 일어난 건 아니니 스트레칭이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겠다. 이리 저리 몸을 움직이고 짐을 챙기고, 두루마기까지 챙겨입고서 방을 나선다. 뒤에서 어디 가냐는 어머니의 말이 들려오고- 산책. 늦기 전에 들어와라. 짧은 대화를 끝맺는다. 밖은 어느새 내려앉는 해가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날씨가 많이 풀렸네. 현무는 상쾌한 기분으로 걸었다.
오늘이 결판이다.
거대한 세력이 충돌한다. 오늘 센터에서는 아마 세미나의 명분으로 의식이 진행될 것이고, 반대쪽에서는 어떻게든 막기 위해 달려올 것이다. 가급적 진득하게 싸워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현무는 백팩에 무구를 담고 택시에 올라탔다.
"한라산 가는 거 맞죠?"
"예."
현무는 헤드셋을 꺼내 음량을 높였다. 마지막으로 그만둘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지. 어쩌면 조금 착한 척을 할 기회일 수도 있고.
하지만 그건 재미가 없는 걸.
"다 왔어요."
택시에서 내린 현무는 한 걸음씩 한라산을 올라간다. 한 걸음, 한 걸음. 헤드셋을 목에 걸고 귀를 기울이자 바람을 타고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우리의 대오가 코앞인데...' 시작되었나. 조금 속도를 내야겠어. 현무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느 순간부터 말싸움은 소란이 되고, 주문과 기도가 시끄럽게 귓가에 맴돌고 비명이 들렸다. 아비규환이군. 하지만 이제 다 왔다. 눈앞에 백록담이 보였다.
"휴-!"
현무는 백팩을 집어던지고 어깨를 주물렀다. 한밤중의 백록담 위로 드넓은 별들이 보였다. 잠시 현무는 하늘을 감상했다. 그러고 보니 오리온자리가 저기던가? 아직도 못 찾겠네. 팔을 휘휘 돌리며 현무는 중얼거렸다.
"뭐하냐?"
"와씨 깜짝이야."
나직이 불러오는 목소리에 현무는 깜짝 놀라 뒤돌았다. 어두운 그림자에서 불쑥 소희가 튀어나왔다. 현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깜짝 놀랐잖아. 내 여린 마음씨를 좀 생각해 줄래?"
"네 마음씨가 여린지는 모르겠고. 여기서 뭐 하냐니까?"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너야말로 참전 안 하고 뭐해?"
"쥐새끼 한 마리가 빠져나가서 말이지."
소희는 차가운 얼굴로 현무를 쏘아본다. 현무의 얼굴에서 점차 웃음기가 사라졌다. 현무는 머리를 박박 긁더니 소희를 노려보았다.
"아. 진짜... 다들 요즘 왜 이러지. 쓸데없는 훈계만 잔뜩 하고. 재미없다, 진짜."
"누구한테 훈계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반성은 안 하는 모양이네?"
"반성?"
현무는 입술을 삐죽 올린 채 뒷목을 쓰다듬었다.
"뭐, 반성이라는 게 원래 수습할 수 있을 때나 하는 거잖아."
"사고를 크게 쳤나봐. 혼백이 없는 것도 그 '사고'에 해당하려나?"
"뭐, 그렇지?"
현무는 손을 주머니에 넣으며 씩 웃었다.
"나도 예쁨받는 거 좋아해. 근데, 원래 이렇게 자꾸 뭘 들추려고 하면 사람이 예민해질 수 밖에 없잖아. 모르면 서로 잘 지낼 수 있는데."
"네가 아는데 모르는 일이 되나?"
"우와. 진짜 선비같은 말이다 그거."
"네가 소인배인 거지."
소희는 팔짱을 끼며 답했다. 현무는 어깨를 으쓱하곤, 넉살 좋게 대답했다.
"네, 네. 형사님. 취조 잘 받았는데요, 제가 자영업자라서요. 이제 좀 보내주실 수 없나요?"
"아니. 이 기회에 우리 진득하게 대화를 좀 나눠보자. 영혼으로 하는 대화, 뭐 그런 거."
"그거 놀리는 거 맞지?"
"뭐... 그렇지."
소희의 뒤에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빠르게 범의 형상을 갖춘다. 하아. 현무는 한숨을 내뱉었다.
"소희야, 지금 우리 나이에는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겠지만, 우리가 영화 주인공도 아니고. 응? 그러니까 쓸데없이 서로 모르는 척 하고 살면 얼마나 좋아. 어른들이 괜히 부조리에도 조용히 살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사내 부조리, 횡령, 지구 온난화와 자본주의로 인한 불평등... 국제위기... 뭐 그런 거 있잖아. 서로 살다 보면 적당히 묻어주고 그러는 거지. 근데 가끔 꼭 그런 것들을 못 참는 사람들이 있기는 해. 나는 그런 사람들이 참 좋은데, 오래 두고 보고 싶은데, 보통 명줄이 짧더라고. 너무 슬프다, 진짜로."
말을 마친 현무가 부채를 꺼내들어 펼치자 검은 불꽃이 주위를 에워쌌다. 백호가 이를 드러내고, 소희가 검을 꺼내들었다.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신살神煞 심화深火."
꽂히는 순간 혼백을 태워버릴 불꽃들이 무수한 화살의 형태를 갖추고 날아간다. 맞은편에서도 살기를 담은 칼날 같은 바람들이 몰아치고, 백호가 바람을 타고 입을 벌린 채 달려왔다. 현무는 날렵하게 바람을 피하고, 소희 또한 땅을 솟아올려 막아낸다. 현무는 부채 끝으로 불꽃을 조종하며 불뱀을 만들어 백호를 묶어버렸다. 털이 타들어가도록 뱀은 아나콘다처럼 백호를 조였다.
"으윽!"
백호의 신음소리를 뒤로 한 채, 빠르게 현무는 불꽃을 그러모아 원귀가 한데 모인 덩어리를 만들어 소희에게 던져버렸다. 소희는 경악할 틈도 없이 빠르게 검을 치켜들어 덩어리를 갈라버렸다.
"도대체 얼마나 혼을 모아둔 거야! 저승에 가야 할 혼들을 가두는 건 천리에 거역하는 거야. 몰라서 이래?"
"몰랐으면 혼백까지 태웠겠냐? 내가 사고 쳤다고 했잖아!"
현무는 다시 부채를 펼쳐 진언을 외운다. 소희는 순식간에 주위 공기가 변했음을 느꼈다. 완전히 다른 세계의 공기. 뼛속까지 냉기가 파고들었다.
"청련지옥青蓮地獄 대빙살大氷煞."
칼날 같은 한기가 소희에게 쏟아진다. 재빠르게 백호가 뱀을 뜯어내고 소희를 낚아채 날아올랐다. 하늘에서 현무를 향해 바위가 쏟아졌다. 큼직한 돌덩이를 요리조리 피한 현무는 다시 하늘을 향해 검은 불꽃을 쏘아댔다. 땅에서는 먼지가 자욱하고 하늘은 불바다가 되어 위아래를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바위가 떨어지는 굉음도 잦아들고 자욱한 연기도 멎어들었다. 점차 개인 풍경에서 서 있는 사람은 현무였다.
- 초월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이사야 14:12
"중생들아... 도道가 완성되는 것이 보이느냐... 숨이 끊어지기 전에 보아라..."
흙투성이 얼굴을 닦는 와중 목소리가 들린다. 젠장, 아직 제대로 준비가 안 됐는데. 황급히 배낭을 열고 단검을 꺼냈다. 몇 명이 죽었지? 서둘러야 한다... 흑요석 단검이 달빛을 반사한다.
단검을 높이 들어올리고 제단에 불길을 만들어낸다. 황금빛 불꽃이 피어오르고, 붉은색, 푸른색, 흰색, 검은색의 불꽃이 제단에 솟아오른다. 한라산에서 볼 수는 없지만 분명 느낄 수 있었다. 빠르게 현무는 흑요석을 땅에 꽂아버려 한라산 중지에 검을 꽂아버렸다. 지맥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현무는 온 몸으로 알 수 있었다. 자욱한 안개가 코앞도 알아볼 수 없게 생겨나 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주인 잃은 산은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 신체처럼 온 몸으로 새 주인을 거부한다. 현무는 몸에 가둬둔 음기를 지면에 흘려보내 강제로 붙잡았다.
"다름이 아니오라 이 산 구능마나님수이시나새우개소당마나님수이시나하위함역하여지나시는터이신데꽃이피어꽃맞이요잎이피어잎맞이로잠깐놀고가자는행차라고여쭈어라..."
이건 굿이 아니다. 누구도 남의 집 문을 강제로 비집고 입에 강제로 음식을 쑤셔넣는 것을 굿이라고 하지 않는다. 혀가 꼬일 정도로 빠르게 경문을 외우며 몸에서는 쌓아둔 원혼들을 하늘을 향해 쏘아올린다. 용오름을 떠올리게 하는 검은 기운이 우악스럽게 하늘로 솟구쳤다. 번개가 치고 몰려든 먹구름 틈으로 천문이 열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누구냐? 어떤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짐의 휴식을 방해하느냐?"
현무는 웃을 틈도 없이 빠르게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휴식 같은 소리 하네. 수백년 전에 마마신을 이끌고 너를 정복한 군대가 돌아왔다.[1] 우리는 네 황금을 훔치고도 성이 차지 않아 제단을 부술 것이고, 네 자식들이 우리의 말을 쓰게 할 것이다. 이 땅에 더이상 너를 믿는 자들은 남지 않았으나 풀은 뿌리가 있으면 새로 돋아나니 완전히 명줄을 끊어야 하지 않겠냐. 우리는 네 깃털을 모조리 뽑아내고 몸을 구워 토막내 짐승 밥으로 던져줄 것이다. 그러니 대가리를 꺼내시지!"
"이놈-!"
구름 틈으로 먹구름에 어울리지 않는 찬란한 무지갯빛이 새어나오고, 거대한 뱀이 머리를 드러냈다. 뱀은 입을 벌리며 외쳤다.
"나는 땅과 하늘을 주관하고 두 번째 태양 위에 올라선 주인이다. 내가 잿더미로 인간을 빚어냈고 너희 개미들이 씹어 삼키는 풀들을 땅에서 올려냈다. 너희 인간은 내 숨길 한 번에 죽고 사는 운명이다. 어떤 자가 네놈을 제사장으로 뽑았느냐? 나를 부른 의도가 무엇이든 너희는 멸족하고 믹틀란조차 입을 닫아 영원히 떠돌게 하겠다!"
현무는 피식거리며 붉은 활을 꺼내들었다.
"자기 얼굴도 똑바로 못 보는 사생아야.[2] 태양이라고 했냐. 그래, 어디 한 번 태양을 쏴죽인 활을 맞고도 사는지 보자. 주위를 둘러봐라. 이곳의 타파스(तपस्)[3]는 내 손에 있다. 너는 오늘 별도 추락한다는 것을 배울 테고, 난 팔부신중[4]이 될 것이다. 너도 아귀처럼 어디 끝없이 괴로워해봐라. 내가 거미줄이라도 내려줄 테니!"
신은 거대한 입을 쩍 벌리고 내려오고, 현무는 땀방울을 흘리며 조준한다. 끝없는 굴처럼 벌린 입을 향해 현무는 활을 쏘았다. 지나가는 자리에 먹물이 번지듯이 천살이 활을 타고 날아들어 잊힌 신을 향했다.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다. 예의 화살이 꽂히자 신은 준비한 불꽃들에 속절없이 묶였다. 몸부림조차 칠 수 없는 구속에 뱀은 현무를 노려볼 뿐이었다.
"자, 그간 많이 먹었으니 한 번 쯤은 먹혀보라고. 걱정하지 마. 내가 앞으로 많-이 먹어줄게!"
----- [1]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 정복에서 천연두는 압도적인 힘을 발휘했다. 맨던족은 단 세 달만에 약 2000명의 인구가 30명 미만으로 남았다. 침시안족은 유럽에서 유입된 질병으로 수십 년 만에 전체 주민의 거의 80%가 사망했다. 역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질병(대표적으로 매독)또한 유럽으로 퍼졌다.
- [2] 케찰코아틀의 출생 설화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마법의 돌로 잉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설화에서 마법의 돌은 원치 않는 임신의 비유로도 자주 쓰인다. 케찰코아틀은 거울을 보고 자신의 외모에 실망했으나 시종이 터키석 가면을 만들어주자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는 설화가 있다.
- [3] 베다에서 타파스(열기)는 일자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태초에 어둠이 어둠에 덮여 있었다. 어떤 것을 구별할 수 있는 표징도 없고, 오직 공허하고 형태도 없는 물의 혼돈뿐이었다. 그때 대단한 ‘열기’(tapas)에 의해서 ‘일자’가 탄생했다.' 현무가 다섯 개의 제단을 만든 것은 불의 제단에 대응한다. 불의 제단은 프라자파티의 다섯 가지 신체 부분을 상징하는 5층으로 구성된다. 5신체 부분은 머리카락, 피부, 살, 뼈, 골수(정수)로 이어지는 5가지 층을 가리킨다. 프라자파티는 5개의 계절과 5개의 방위(方位)를 지닌 자로 이해된다. 아그니가 프라자파티를 회복시켜줌으로써 제단이 완성되고 그 위에 아그니(불) 곧 태양이 자리하게 된다.
- [4] 불교에서 아수라는 팔부신중으로 여겨지는 동시에 아귀의 일종으로 여겨진다.
- 이후
- 땀을 닦아내고, 현무는 손을 움직인다. 넘치는 힘이 느껴진다. 썩어도 준치라고, 잊혀 살았어도 힘이 대단하군. 마음 속에서 거슬리게 느껴지던 허기도 가라앉았다. 날씨도 잠잠해지고 정신은 우주를 유영하듯 맑으며, 제주도의 모든 일이 한눈에 보이는 기분이다. 불어오는 바람, 섬에 부딪히는 파도, 바람에 쓸리는 먼지까지 내 몸처럼 느껴진다. 문득 꿈틀거리는 듯한 불쾌함이 느껴져 현무는 시선을 돌린다.
"아, 저기."
잡스러운 사이비 교주 아니야. 현무는 피식거리며 손가락을 들어올린다. 안타깝게도 맞선 사람들은 죽었군. 너희도 따라가라. 사필귀정, 이것은 선업을 쌓는 일이니... 현무의 눈이 뱀처럼 변하고 손가락을 내리자, 천둥 같은 굉음이 건물에 퍼진다.
"이건... 이게 뭐야!"
땅이 거세게 일어나 건물을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교주와 몇 안 남은 간부들은 당황하지만, 상황을 파악할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지붕은 무너졌다.
"잘가~"
귀찮은 일을 끝마친 현무는 주변을 둘러본다. 아직 소희와 백호가 쓰러져 있다. 현무는 훈풍을 덮어 둘을 감싸놓고 짐을 챙긴 뒤 내려간다. 이제 뭘 할까, 수능 준비? 모쪼록 좀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네. 신나는 발걸음으로 현무는 하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