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이 다 준비되었다고?"
[ㅇㅇ]
리온과 소나네 차원, 그 중에서도 사이버 월드 쪽.
자연적이라기보다는 인공적인 느낌이 강한 그 가상 공간 안에서 소나의 앞에 나타난 프로키온(의 분신)은, 자신이 바닥에 그린 동그라미를 소나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얼핏 그저, 하나의 원으로 보였다. 소나가 허리 양 옆에 늘어뜨려진 리본 파츠를 신경쓰지 않아도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원. 프로키온이 진지한 표정으로 소나를 원 안으로 들여보내고, 소나가 영문을 몰라 얼떨떨한 상태로 발을 디디기 직전까지는. 그러나 소나가 완전히 들어오는 그 순간, 백금색으로 빛나는 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은 뻗어지고 교차하고 이어지며 원의 안을 채웠다. 가장자리의 한 점은 원의 테두리를 한 바퀴 도는 선이 되었다가, 바닥에서부터 소나를 훑고 올라가는 반투명하고 옅은 원형의 면이 되었다.
"...마법진?"
자신의 발 아래,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마법진의 형태를 내려다보다 다시 자신을 돌아보며 묻는 소나의 시선에, 프로키온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마법진 바닥에서 올라온 원형의 옅은 빛무리가, 긴장으로 굳어 있는 소나를 완전히 훑고 지나가 흩어지고 나니 여러 창들이 허공에 떠올라 부산스레 프롬프트를 띄웠다 사라졌다.
그 사이로 보이는 네모난 통신창에서는 리온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 "지금 소나한테...마법을 걸고 있는 거야?" ]
[그냥 거는 게 아니다. '심는' 거다.]
곧 마법진의 선에서 백금색 빛이 빠져나와 하나의 작은 빛의 구처럼 뭉쳤다. 빛덩이는 떠올라 소나에게 다가가다, 소나의 가슴께 바로 앞에서 멈춘 채 떠 있었다.
[억지로는 심지 않는다. 선물이니까.]
[주인이 있는 패밀리어라면, 주인의 동의를 받아야 마법을 심을 수 있다는 것도 있고.]
"프로키온 군의 차원에선 넷 내비는 패밀리어의 일종으로 정의되는 거구나...틀린 말은 아닌가."
그와 동시에, 소나와 리온의 시야 사이에 하나의 창이 떠올라 꺼지지 않고 남는다.
[ 'Sonar.EXE'에게 '신기루'를 설치합니다.
계속하시려면 다음을 눌러주세요. ]
[ 취소 / 다음 ]
"이게 선물인 거야?"
[ "이거...'심는' 게 아니라 '까는' 거네?? 오...괜찮은 거려나?" ]
[ㅇㅇ. 적응하고 변화하는 마법.]
[근데 영구적인 변화 아님. 그래서 신기루.]
"적응하고 변화하는 능력이라..."
[위험하진 않으니 써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무시하고 잊고 살아도 됨. 그냥 아무때나 쓰지는 못할 테니까.]
[ "왜 아무때나 쓰진 못한다는 거야?" ]
[소나가 지나치게 눈에 띄는 것을 원하지 않는댔으니까. 아무 일도 없으면 신기루도 일어나지 않는다.]
[신기루를 꺼내 두르기 위해선 네가 이 차원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 가 있거나, 아니면 당장 네 주변에 이 차원 출신이 아닌 자가 있거나 해야함]
"내가 빌었던 소원대로, 조건을 맞춰준 거구나."
[ㅇㅇ]
띄워진 초톡방 화면 속, 목소리 없는 소년의 답을 읽은 소나의 얼굴에 흥미로워하는 기색이 퍼진다. 소나는 옆으로 약간 몸을 치워 리온에게도 내용을 보여주었다.
"실수로라도 불필요한 상황에 발동될 일은 없겠네. 그렇다면 오히려 좋아. 리온 군은 어때?"
[ "오...소나도 괜찮다면...받아보자. 누른다?" ]
"응."
리온의 터치펜 끝이, 그가 보고 있던 홀로그램 화면에 나타난 메세지 창의 '다음' 선택지를 꾹 누른다. 그러자 떠 있던 빛의 구가 기다렸다는 듯 소나에게 들어간다. 이를 멍하니 바라보던 소나의 표정이 오묘해진다. 실시간으로 '신기능'이 추가되어 자리잡는 느낌이 기묘했던 탓이다. 다행히 오래가진 않았지만.
[ "어때? 괜찮아?" ]
"어, 응. 괜찮아."
[어디 아프거나 하진 않고?]
"으응."
[그럼 이제 끝났으니까 나와도 됨]
[잘 작동하는지 보는 김에 사용방법 가르쳐줌. 거기서 나와보셈]
소나에게 손짓해보이는 프로키온의 옆에 어느 새 바닥에 또 다른 원이 생겨있었다. 이번의 것은 그려져 있다기보다는...
"물웅덩이...?"
[ "앗, 이런 건 또 언제 만든 거야." ]
...현실세계에서는 비오는 날 길거리에서 한 번씩 보지만, 기상현상이 저절로는 발생하지 않는 사이버월드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었다. 동그란 웅덩이의 수면에 이를 내려다보는 프로키온과 소나의 얼굴이 비친다.
[너 그 탐지 능력 있잖음.]
[그걸로 수면에 비친 상을 향해 신호를 보내라. 그러면 신기루가 잡힐 것이다.]
"능동형 음파탐지에 그런 형체가 없는 것이 잡히려나."
[이건 그런 마법이다. 그 마법을 불러오는 방법이 그렇단 소리다.]
[우리 세상의 마법사들이라면 복잡한 마법을 쓸 때는 영창을 하거나 진을 긋거나 하겠지만, 그런 방식은 너한텐 낯설 테니까 상대적으로 간단한 방법으로 했음]
"그렇구나...일단 해볼게."
소나는 답장을 읽은 뒤 고개를 끄덕이며 물웅덩이 앞에 앉았다. 곧 소나의 헬멧 파츠의 붉은 지느러미와, 허리의 붉은 리본 파츠가 빛나며 삐이- 하는 다소 날카로운 고음과 함께 음파가 퍼진다. 평소 그들이 '소나 디텍션'이라고 불리는 능력이었다. 이 기능으로, 소나는 자신의 이름대로 전투 중에 적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발생해도 주변에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었다. 여튼 본래라면 소나가 의문을 제기했던 대로, 수면 자체라면 모를까 수면에 비친 거울상이 '음파 탐지'에 잡히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것은 형체를 가진 것이 아니라 단지 빛이 수면에 반사되어 맺힌 상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음파를 보내고 다시 받느라 집중하느라 감겼던 시안색의 눈이 놀라며 번뜩 떠진다. 정말, 소나의 형상이 비춰지고 있던 그 위치에서 무엇인가 반응이 있었다.
[ "어엇!" ]
수면에 무언가 떨어진 것도 아닌데 그 위에 비친 거울상이 흔들린다, 그와 동시에 소나의 몸도 빛난다. 수면에 반사된 햇빛처럼 희기만 했던 빛은 이내, 백금빛으로 변화하다 꺼진다. 빛이 다시 잦아들었을 때 소나의 모습 또한 변화해 있었다.
소나의 은발은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어졌고, 그 중간에는 백금색 고리가 묶여 있었다. 그는 세일러복 카라 상체 파츠 대신 마왕처럼 망토를 두르고, 헤드 파츠의 붉은 지느러미 또한 뿔처럼 한 바퀴 감겨 올라가는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이건...그렇구나."
다시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다시 프로키온을 바라본 소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루가 있다는 건 그 원본도 어딘가에 있다는 것."
소나가 손짓할 때마다, 언젠가 로키가 바이러스 퇴치를 거들 때 일으켰던 마력의 화살이 쏘아졌고, 소나의 눈 앞에 있던 물웅덩이의 물이 순간 분수처럼 치솟았으며, 소나의 몸을 감싸는 오오라가 잠시 생겨나기도 했다.
그제서야, 리온도 자신의 화면에 평소 보이던 소나의 히트포인트 잔량 표시란 외에 또 다른 것을 가리키는 게이지가 추가된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소나가 이러한 '마법' 같은 동작을 할 때 깎였다가도 조금씩 다시 차오르는 '마력' 게이지가.
[ "소나가 마법사가 되었어!" ]
"이건 내가 만난 이차원의 존재를 비추는...즉 카피하는 능력인 거구나. 지금 이 힘은 프로키온 군의 신기루이고."
[ "그런거야?! 굉장하잖아! 초차원 카피 능력인가!" ]
소나를 지켜보던 프로키온도 의기양양히 웃으며 박수로 긍정했고, 지켜보던 리온 또한 박수를 쳤다. 짝짝짝작.
[달리 말해서]
[신기루를 두르기 위해선 네가 상대를 보고, 그럼으로써 알게 된 그 상대를 비춰야함.]
[진짜 초차원 카피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전부를 완벽하게 베끼지는 못하겠지만,
일부만이라도 따라한다면 조금은 상대를 놀라게 할 수 있을지도. 혹은...친구의 능력을 나눠받는 용도로도 쓸 수 있겠지.]
[너의 차원에 위기가 닥치면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혹시나 나한테도 문제가 생겨서 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
[ "아~. 그렇네!! 그렇게도 쓸 수 있겠다. 우리 거기서...무서운 상대도 만났지만, 톡방에서 친구도 나름 좀 만들었었지?" ]
[ㅇㅇ]
[그러고보니 저번에 그 검은네모도 너 걱정하던데...아무튼 마음에 들음?]
"응. 고마워, 로키 군. 좋은 선물이네."
[ "대체 이런 걸 어떻게 구현한거야? 대박이다...! 로키는 천재인가봐! 선물 고마워!" ]
리온과 소나의 감사 인사와 칭찬을 듣고 크흠 하는 헛기침 소리를 내는 로키의 얼굴이 약간 붉어진다.
소나 또한 빙긋 웃어보이고, 리온도 눈을 빛내며 감탄한다.
[혹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으니 당분간은 내가 자주 와서 지켜보겠지만, 그래도 문제가 생기면 나 부르셈.]
"그래."
소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차원에서 온 친구의 모습을 눈에 담다, 문득 뭔가 생각난 듯 프로키온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네모 씨 하니까 생각난 거지만 너도 걱정하시는 거 같던데...괜히 다른 분들을 과하게 걱정하게 만든 거라면, 언젠가는 해명하는 게 좋지 않을까나아."
[ㅇㅇ...]
그 말에 프로키온은 자신을 바라보는 리온과 소나의 시선을 슬슬 피했지만.
[ "뭔데 그 점점점은!" ]
[언젠가는 할 거다. 아마도...]
"부담스러우면 그냥 웃고 떠들면서 잘 지내는 모습만 보여줘도 좀 안심할 거라고 생각해애."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