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드랜지어의 보스인 그 남자는 비노의 대장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자신보다 10살은 더 어린 데다, 20년은 덜 배운 것 같은 그런 사람과 자신이 협상을 해야 한다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소한 다른 사람을 찾아왔을 때 예의를 차리려는 노력이라도 해주었다면 그를 조금쯤은 덜 싫어했을 텐데.
"우선, 다리를 테이블에서 내리시게."
대장은 바닥에 침을 뱉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보스는 그를 쏴버리고 싶은 충동을, 그 행위를 한다면 일어날 손해를 계산하는 것으로 억눌렀다.
"이번에도 개소리하면서 시간 끌면 그냥 다 엎어버릴 줄 알아 영감쟁이."
"언행도 신경 써준다면 고맙겠군."
보스가 한숨을 내쉬었고, 대장은 얼굴을 구겼다.
비노의 대장인 그 남자는 하이드랜지어의 보스가 싫었다. 저 새끼가 보스만 아니었다면 벌써 어디 뒷골목으로 끌고 들어가 온갖 굴욕적인 행위를 시킨 뒤에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어차피 똑같은 부류인 주제에 온갖 고상한 척은 다하고,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며 굽실대면서 뒤에서는 뒤통수칠 꿍꿍이나 품고 있는 것이 몹시 불쾌했다.
"일대일로 붙으면 한주먹감인데."
"언행."
"아, 들렸어? 미안해!"
시비를 걸고 나서야 대장은 기분이 좀 풀어졌는지, 테이블 위에 올려놨던 다리를 내렸다.
건들건들한 자세는 여전한 채였지만 보스는 기대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꼿꼿이 세우고 있던 몸을 등받이에 기대고 서두를 꺼냈다.
"그래,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은데 우선 차부터..."
"옘병, 니가 저번에 그 지랄 떨어서 뒤통수 맞은 거 벌써 잊어버린 것 같아? 내가 그렇게 멍청한 새끼로 보이시나 봐?"
그의 말이 맞았다. 보스가 차 대접을 핑계로 대장의 발을 묶어놓은 덕에 승리를 따낼 수 있었던 것이 고작 보름 전이었다. 그러니 노골적으로 경계해도 별 수 없는 것이다.
비록 이번에는 순수한 의도였지만.
"그럼..."
"다 떼고 용건부터 들어간다. 우리 애들 건드렸다며?"
보스는 그제야 그가 갑자기 하이드랜지어의 조직원들을 때려눕히며 자신을 부른 이유를 이해했다.
'골치 아프게 됐군.'
비노의 대장은 하이드랜지어의 보스와 무척이나 달랐다. 행동하기 전에 수를 읽지도 않으며, 손익계산도 잘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과 조직의 체면치레와 자존심. 그것만을 중요시하는 단순한 성격이었다. 그 탓에 보스는 다 큰 어른을 어르고 달래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해야 했다.
'이럴 때마다 얼마나 시간을 뺏기고, 손해를 보는지 설명해도 모르겠지.'
그나마 둘이 직접 만날 일은 거의 없다는 것 하나만이 위안거리일까. 한번 만났으니 한동안은 얼굴 볼 일 없을 거라는 사실에 집중하며 보스는 대충 비위나 좀 맞춰주기로 했다.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 말해준다면 따로 불러내서 문책하도록 하지."
"아니, 넘기면 우리가 알아서 처리하고 보낼게."
그러나 보스가 원하는 상황으로는 흘러가지 않았다. 어느 조직이든 자신의 조직원을 넘겨주는 건 최고의 굴욕이자, 굴종의 상징이었다. 그만큼 쉽게 요구할만한 것이 아니었으나 대장은 태연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그건 안 될 말이지."
"하, 남의 앞마당에 슬금슬금 기어들어 오는 건 되면서?"
쿵 소리를 내며 둘 사이에 있던 테이블이 내동댕이쳐졌다.
상당히 큰 테이블이었지만 이 버려진 도시에서 손꼽는 무력의 소유자인 비노의 대장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야."
비노의 대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도시를 양분하는 조직 중 하나의 우두머리였다.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었다.
"움직이면 조직원들을 부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앞에 있는 남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이드랜지어의 보스는 금방이라도 죽여버릴 것 같은 태도로 협박했다.
"넌 내가 무슨 애새끼로 보이나 본데."
"그렇지."
"왜 내가 너를 '직접' 찾아왔을 같아?"
보스가 계속 위화감을 느끼고 있던 부분을 대장이 먼저 짚었다.
비노와 하이드랜지어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건 길거리 애들도 아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조직의 우두머리끼리 직접 만난다는 건 작은 일이 아니었다.
조직원들끼리 싸웠다거나, 사소한 영역 다툼을 한 정도로 일어날 일이 아닌것이다.
"우리 영감쟁이가 바깥 새끼들이랑 붙어먹고 다니더니 간덩이가 부었나 봐? 왜, 이번 기회에 우리 싹 밀어버리게? 이 씨발 새끼야?"
"헛소문을 들었군."
"지금 우리 애들이 니들 치자고 시끄러워. 난 내 선에서 끝내러 온 거다. 니가 뱃속에 구렁이를 몇 마리 키우는지 아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느 쪽도 밀리지 않는 기 싸움이 한참 흐르던 중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건 비노의 대장 쪽이었다.
"곧 뒤져도 니가 원하는 대로는 안 움직일 거다 좆같은 새끼야."
그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다음에야, 보스는 조직원 몇 명을 불러 자리 정리를 시켰다.
"언제봐도 난폭한 자군요."
"개인적으로는 머리도 행동을 따라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말이야. 알아차렸으니 어쩔 수 없군. 더는 할 필요 없다고 일러들 두게."
"알겠습니다. 보스."
비노의 대장이 씩씩거리며 건물을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부하 몇 명이 곧장 달려왔다.
"대장이다!"
"대장! 살아 나왔구나!"
"꺼져! 안 그래도 망할 영감쟁이 때문에 기분 잡쳤으니까!"
욕지거리부터 내뱉는 보스와 달리 부하들은 하나같이 싱글벙글 웃는 상이었다. 자신들의 대장이 단신으로 들어간탓에 어지간히 걱정했던 것이었다.
"개 같은 영감쟁이. 분명 뭔가 있는데 모르겠어..."
"참 대장, 아까 형수님한테 전화 왔었어."
"뭐래, 사랑한대?"
"아니, 죽여 버릴 거래."
그 말을 듣자마자 아직도 붉히고 있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고, 발걸음이 멈췄다.
"왜, 왜왜, 왜? 뭐 때문에?"
"몰라. 지난주 꺼 들켰나 본데?"
그는 재빨리 지난주에 뭘 했는지 회상했다. 오랜만에 부하들이랑 술을 먹었고, 기분 좋아서 지나가던 몇 명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팼고, 2차를 갔고, 거기 있던 바니걸 언니야들이 참 예뻤고...
"...야."
"왜 대장."
"가서... 내가 많이 사랑한다고 전해."
"...내가?"
"안 뛰냐? 야, 안 뛰어? 어쭈 발이 보인다? 뛰라고! 더! 더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