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인기많은 밴드인가."
휴대폰을 내려놓고 직원 휴게실의 의자에 기대듯이 앉았다.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더 인기많은 밴드가 되어서, 더 많은 인기를 얻어서. 도망친 녀석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준다던가 하는 그런 꿈같은 이야기를 상상해본적이 없다면 분명히 거짓말이겠지. 그때와 지금을 확연히 가르는 차이는 분명히 열정의 결여일 것이다.
무네노리는 제법 괜찮은 밴드였다. 팬이 많다거나, 음악성이 좋다거나 그런건 아니었지만 악기를 경험한 사람이 나 밖에 없는 것 치고는 말이다. 반년이 안되어서 라이브를 할수있게 되었고 나름대로 코어하지만 팬층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교 1,2학년들이 열심히 하는게 귀여워보여서 그랬던 것 같기는 하지만 나름 스카우트제의라던가 하는 것도 두번정도는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는 한창 성격이 그랬던 탓에 우리는 우리의 음악을 한다면서 전부 까버렸지만 그때 손을 잡고 메이저데뷔를 노렸다면 아마 지금처럼 끝장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뭔가 고민이 있는 표정이네."
"아, 미유. 고생했어."
"음음, 그야 고생했지. 넋이 나간 누구씨 덕분에 지금 마감을 혼자서 하고 있잖아?"
"미안하다니까... 그년들, 아직 안갔지?"
"아직도 가게 입구에서 농성중이야. 확 영업방해로 신고해버릴까?"
"그래주라 제발."
언제나와 같은 이야기. 무네노리를 그만두고 나서 남은 멤버는 우리 둘 뿐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기타 겸 보컬로 강제 직업변경을 해버린 녀석은 원래 이런걸 하러 온게 아니라면서 그만둬버렸으니 진정한 의미로 무네노리에 남아있던 사람은 미유와 나 뿐이다. 그 인연인지 아직까지도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게 되었던걸 보면 기구하다는 말이 그야말로 어울리는 상황이리라.
"요즘 자주 찾아오네."
"쓰레기들의 생각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출입금지를 받으니까 끝날때까지 입구막고 기다릴거라건 생각못했지 아무래도..."
처음 찾아왔을때, 쿠온은 한 번 용서했던 만큼 최대한 대화를 해볼 생각이 있었다. 만약 그때처럼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면 개같은 기분이기는 해도 일단은 용서를 해주자. 그리고 정식으로 그 노래는 더이상 하지 말라고 말할 생각이엏다. 하지만 이오리는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여전히 쓰레기같은 라이브하우스네'
'너 지금 뭐라고했냐'
'안들렸던걸까? 쓰레기같다고 했어.'
살인을 결심한 나를 막은건 미유와 쿠온이었다. 그 여자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을것 같아 쿠온과 이야기하려 했지만 사사건건 참견하며 의도적으로 쿠온과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는것을 보면 무언가 대화를 하는 것 만으로도 들킬만한 것들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칸나, 최근에 밴드 권유 받았다면서?"
"밴드라고 할지... 유이가 최근에 기타를 시작했거든. 간간히 가르쳐주다보니 말만 들은거야."
"어? 그럼 기타 다시 시작하는거야?"
"그건. ....아니지만. 그러는 너는 드럼은 어떻게 할거야?"
"그 이후로 밴드 몇개 돌면서 세션멤버 하고있거든. 꽤 짭짤하게 벌어."
너랑은 다르다는 말씀. 그렇게 말한 미유는 손가락으로 동전모양을 만들어내면서 키시싯 하고 웃었다. 그런가. 다들 나름대로 살고 있구나. 쿠온에 이오리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과 별개로 지금은 인기 밴드의 리더와 프론트맨. 미유는 고정된 곳은 없지만 나름대로 밴드맨으로서 잘 해나가고 있다. 정말로 완전히 손에서 놓아버린건 나뿐인가? ...이젠 연락도 안되는 그 녀석은 뭐 어떻게든 잘 살테니까. 신경쓰지 말자. 신경쓰지 말자.
"그러고보니 유이쨩 말이야, 나한테 자기 밴드 들어오라고 권유 했단 말이지."
"...어떻게 만난거야?"
"그야 같은 학교이기도 하고, 내 공연을 봤다던데?"
"설마 유이가 무네노리에 대한걸 알고 있던것도."
"응. 난데?"
"이년이"
관자놀이를 꾸욱 하고 누르며 들어올리니 으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가볍게 미유의 몸이 떠올랐다. 말하기 싫다고 했었는데 어디서 알아왔던건가 했는데 네년이었구나.
"그래서 어쩔거야?"
"아으.... 어쩔거냐니?"
"밴드, 할거야?"
시간이 멈추어버린 듯한 정적이 둘 사이를 갈라놓았디. 미유는 마치 놀랐다는 것 처럼 눈을 크게떴지만, 저런식으로 반응을 한다는 건 언제나 '자기가 재미있을 만한 일'이 벌어졌을 때 뿐. 그리고 그런 일은 높은 확률로 나에게 있어서 매우 귀찮은 일들이었다. 아 젠장
"할거구나."
"그야 유이쨩은 재밌어 보이니까. 누구씨랑 다르게 열정이 있다고 해야하나? 알잖아?"
알지. 그녀석의 연주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있으니까.
실력은 초보자. 매일매일 연습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3개월만에 라이브까지 성공시킨 토야마 카스미나 그냐우천재의 부류인 츠루마키 코코로와는 다르다. 철저하게 범인의 연주. 아마 지금같은 방식으로 반년을 한다면, 라이브를 할만한 실력으로 만들 수 있겠지만 그정도의 노력을 먼저 언급한 두사람이 한다면 같이 연습을 시작해도 일년안에 무도관으로 갈 수 있을거다. 그정도의 재능이다.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한 정도. 과거에는 걸즈밴드가 드물었던만큼 걸즈밴드라는 희소성으로 인기를 얻었을지도 모르지만 전국시대라고도 불리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큰 의미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뭐라고 하면 좋을까. 패기있다? 듣기 좋다? 아니 전부 아니다. 무엇도 그 연주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
그건 자유롭다. 마치 기타를 치는것이, 노래를 하는것이 너무 좋아서 버틸 수없다는 것 처럼 자유로운 음악을 한다.
'그래서 제안이 있는데."
"...뭔데?"
"역시 같이 밴드하지 않을래? 칸나의 기타가 필요한데."
"안한다고 했잖아."
단칼에 대답을 끊어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있으면, 무슨 말을 들을지는 뻔하니까.
"...마감, 아직안끝났잖아. 다녀올게.."
"괜찮겠어?"
"시체치울 준비나 해."
"드디어 나왔구나."
"카, 칸나짱..."
떨고있는 검은머리의 여자와 그리고 긴 붉은머리를 땋아놓은 여자. 쿠온과 이오리가 가게의 출입구쪽을 가로막고 서있었다. 어쩜 이렇게 순수하게 방해되는 년들일까 하고 놀라는 한편, 마감정리를 위해 나온만큼 일부러 그쪽에는 눈을 두지 않고 묵묵히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대화를 이어나갔다간 돌이킬수없게 될테니까. 하지만 그걸 아는 것은 나뿐이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를 잡고 거칠게 당기는 탓에 강제로 얼굴을 마주 할 수밖에 없었고 그대로 쓰러진건 이오리였다. 그대로 밀쳐버렸으니까.
"사람이 이야기하면 좀 들, 꺅!"
"두번다시 오지 말라고 했지. 다시 오면 죽인다고도 말했고."
"카, 칸나짱 너무 심한거 아니야...?"
"쿠온, 닥치고 있어. 지금 안때린건 얼마전에 라이브에서 패버려서 그런거니까."
쿠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야 할말이 없을테지. 해봐야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테고.
"난 말이야. 너희를 용서하려고 했어. 쿠온, 네가 처음 왔을때도 결국 이오리를 못찾았다고 했었잖아? 그래서 용서했어. 몇개월이나 걸려서 돌아온게 존나게 아니꼬왔지만 너는 그래도 잘못을 알고 있었으니까."
시선이 바닥에 꽂혔다. 이오리는 여전히 땅을 구르고 있었다. 고작해야 넘어진 정돈인데도 마치 명치를 쳐맞은것마냥 벌레처럼 기어다니는 꼴이 이제야 좀 어울리네 싶어서 푸핫 하고 살짝 웃어버렸다.
"너희가 밴드를 하건 아이돌을 하건 난 상관안해. 그런데 말이야, 너희들이 무네노리를 파는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거든 나는."
"...여전히 무네노리 무네노리. 아직도 그딴 저질 밴드나 붙잡고 있는거야?"
"그러는 너희는 그 무네노리의 노래를 훔쳐가서 팔아먹는 사기꾼 년들이지만. 누가 더 집착하는지 모르겠네."
그래서 나는 음악을 그만두었다. 더이상 추해지지 않기 위해서. 조금 달라졌을 뿐 무네노리에서 도망치고 말았던 것이다. 이년들과 다를 바가 없어.
"다시 한 번 말하는데, 개같은 소리하면서 분탕이나 칠생각이면 시부야에는 얼씬도 하지 마. 요즘 좀 무서운 친구들이 생겼거든. 죽기 싫으면 어디 촌동네에서 저질 음악이나 하면서 살아가라고."
이오리는 일어선다. 마치 강렬한 공격을 맞은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 처럼. 일어나서 증오로 가득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 어쩌라고.
"너는, 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을 안했는데 어떻게 알아. 이오리, 생각난김에 물어몰게. 너는 못오는 이유하나 설명 못할 정도로 우리가 존나 우스워보였어? 쿠온 너는? 왜, 이번에도 소꿉친구인 이오리가 우리한테 말하지 말라고 부탁하던?"
"아,아니야! 저,저기 칸나짱, 잠시만. 정말로 잠시만 이야기하면 이해할 수 있을거야! 그러니까!"
"쿠온, 그만해. 더이상 들을 생각 없으니까. Romos고 나발이고 둘이서 알아서 잘 해나가길 바랄게. 거기서는 중요할때 긴장된다고 도망가지는 않을거 아니야. 너희가 시작했으니까."
등을 돌리고 계단을 내려간다. 어차피 할 말은 없으니까.
"아, 무네노리도 너희가 시작했었지?"
"과해!"
"뭐가?"
"아니 그러니까 그, 좀더 돌려서 말해도 되지않았어?!"
미유는 마치 못마땅하다는듯 허리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키가 작아서 그런지 저러는게 정말로 잘 어울렸지만, 정말로 무슨 소리를 하는걸까. 과하지는 않았다. 실제로도 그냥 살짝 밀친걸 자기 혼자 멋대로 자빠진것 뿐이고.
"나도 쟤들이 무네노리 시절 곡을 팔아먹는걸 알았을땐 부아가 치밀었지만! 그래도 뭐랄까, 칸나는 너무 과해."
"정말로?"
"...과해! 역시 좀 더 생각해봐도 방금은 말이 과했어. 병든 부모도 버리고 런각잡을 미친년들이라니."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어."
...가만보니 일부러 놀리는거구만? 녀석의 머리에 가볍게 촙을 날리고는 남은 정리를 서둘렀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건가, 는 이해했다. 미유의 경우 대부분은 흥미본위로 움직이다보니 지금 이렇게 한군데에서 오랫동안 일하는 것 자체가 신기할 노릇이기도 했고. 내 예상대로 아마 그냥 내 반응을 보고 놀리려고 하는 것일 확률이 무척이나 높았다. 그러니, 아마 별일은 없을것이다.
"뭔가 쌓여있는거 아니야?"
"...뭐가?"
"욕구물만 아니냐는거지."
무거웠다. 마음이, 어쩐지 무거워졌다. 분명 아무일 없는 평범한 대화였음에도.
"칸나는 정말로 '무네노리'의 해체때문에 화가 난거야? 그렇게 좋아하던 기타도 관둘 정도로?"
"...그러는 너는 어떤데."
"그야 화는 나고, 어이는 없지만 칸나정도는 아니려나."
음악을 그만두었다. 특이한 일은 아니다. 하루에 몇십명이 음악을 시작판다고 하면 그만두는것도 수십명인 것이 음악의 세계니까. 적절한 이유를 찾고, 적절한 이름표를 붙이면 적당한 탈퇴사유가 되는것이 이쪽 판이라는 물건이다. 하물며 지금의 유명밴드, 그러니까 아베무지카같은 경우도 해체 자체를 퍼포먼스로 써먹은 적도 있을정도로. 생각보다 충격에 비해 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밴드는 언젠가 끝난다. 모든 즐거운 것에는 끝이있고 무네노리 역시 언젠간 그런식으로 끝났어야했다.
적어도 그정도만 되더라도 만족했을것이다. 하지만, 어땠는가. 두명의 노쇼를 기점으로 점점 몰락해갔다. 신곡을 내려는 의지도 없이 남은 세명이 어떻게든 이어가려고 했지만, 분위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미유답네."
현실의 칼날은 언제나 가정 행복흔 순간에 말도 없이 다가와 단룬에 목을 찔러온다. 그 상처는 무엇으로도 회복할 수 없어서 너무나도 고통스럽지만 참아내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다. 상흔에서는 계속 피가 흘러내리는데, 메꾸지도 못한채로 그저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업ㅎ다.
"이거, 선물.."
"뭐야? 어디...뭐야 이거?"
"초 인기 아티스트 유이쨩의 솔로라이브 티켓."
"...언제하는데?"
"지금."
팟, 하고 불이꺼진 무대에 불이 들어왔다. 모두가 사라진 라이브 하우스, 시선을 교차하는 세사람. 유이가 떨고 있다는 것은 척 보기에도 알 수 있었고, 어울리지 않는 락밴드 티셔츠에 귀여운 기타에 꾸며놓은 뭔가 저항심리가득한 문구가 언밸런스한을 자극하고 있었다. 미유는 어느샌가 무대위로 올라가 드럼의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조용하게. 그리고 나지막하게. 유이가 말하기 시작했다.
[저, 저는 하나사키가와 고등부 1학년! 오토노세 유이입니다! 오늘은 바쁘신데 시간내주서서 저의 공연을 찾아와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유이쨩, 존댓말은 안해도 될거야."
"유이, 당장 내려와."
평소와 다를바 없는 억지로 가득찬 목소리. 떨리고 있지만 확실하게 웃고있는 모습은 다른 사람마저 행복하게 할 자신이 있다는 듯 자랑스러워 보였다.
[오토마치 칸나!!!! 나랑! 지금 여기서!!! 승부하는거야!"